나는 볼 것, 잘 곳, 먹을 것의 순서로 결정을 한다. 가보고 싶은 곳의 동선을 따라 여행하다가 밥때가 되면 그 주변에서 적당히 청결한 식당에 들어가 너무 낯설지 않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다. 다시 말하면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무엇을 먹느냐 보다는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 버거 이야기를 쓰려니 낯설다. 그렇지만 맛있는 버거를 글에서나마 나누고 싶었다.
남편과 강화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출발 전날 역시 나는 강화에서 무엇을 볼까를 찾고 있었고, 남편은 무엇을 먹을까를 검색하고 있었다.먹는 것에 진심인 남편이 선택한 점심 메뉴는 ‘버거 히어로(BURGER HERO)’였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30분 쯤이었다. 쏟아지는 폭우와 오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주차장은 벌써 만차였다.
약간 경사진 땅에 강화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식당은 2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식당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가 시원했다. 식당 외관과 실내 디자인도 버거와 잘 어울리게 이국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식당 내부의 색상과 테이블, 의자, 인테리어 소품이나 사진들도 미국 서부 식당에서나 봄직한 것들이어서 왠지 버거 맛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는데 다행히 10분 후쯤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오리지널버거 세트와 머시룸 베이컨 버거 세트를 주문했는데, 음식이 나오기까지 약 35분을 기다려야 했다. ‘버거가 뭐 별거라고 35분씩이나 기다려야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맛있는 버거는 패스트푸트가 아니니까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버거가 나왔다. 일단 음식은 눈으로 먼저 맛보는 것인데 비주얼은 합격,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입속에서 맛을 느껴보았다. 입 속 가득 육즙이 번지면서 처음에는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느껴지다가 씹을수록 재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버거의 맛을 더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버거들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었다. 히어로 버거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이미 당일 판매를 종료한 사장님께 몇 가지 여쭤보았다.
빵 : 겉이 먹음직스럽게 브라운으로 구워진 빵은 반질반질 윤이 났는데 흔한 햄버거 빵과는 다르게 얇고 부드러웠다. 자정부터 당일 영업 준비를 시작한다는 사장님 부부는 가장 먼저 빵 반죽을 하신다고 한다. 매일 150개만 판매하고 영업을 종료하는데 빵도 150개+주문 오류를 메울 정도의 개수만 만드신다고 했다. 빵이 맛있어서 사 오려고 했는데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역시 버거 맛의 비결은 사장님의 노하우가 들어간 당일 만든 신선한 빵이었다.
고기 : 고기가 유난히 부드럽고 쇠고기 특유의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육즙이 풍부했다. 사장님께 비법을 물었더니 흔히 버거 만들 때 쓰는 냉동고기와 우지(소기름)를 쓰지 않고, 얼리지 않은 스테이크용 고기만 쓰며 고기가 가지고 있는 기름 자체만으로 육즙을 살린다고 했다. 냉동고기의 퍽퍽함을 없애려고 우지를 써서 억지로 육즙을 만들어 내는 다른 버거들과 차원이 다른 맛의 비법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식당 입구에 고기를 보관하는 냉장고를 자신 있게 가리켰다.
야채 : 버거의 고명 역할을 하는 야채도 제 몫을 했다. 빵, 고기와 함께 아삭하게 씹히는 야채의 신선함과 향이 느껴졌다. 역시 계약한 농장에서 당일 수확한 야채만을 쓰신다고 했다. 하나도 허투루 하는 부분이 없으니 버거가 맛있을 수밖에 없다.
버거의 크기 : 버거는 아무래도 속 내용물이 풍부해야 더 맛있다. 그러다 보니 사이즈가 커질 수밖에 없고 한 입에 베어 먹기 버거운 크기가 된다. 그런데 버거 히어로는 크게 한 입 베어 먹기 딱 좋은 사이즈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빵이 두껍지 않아서인 것 같다. 버거에 고기를 얇게 한다거나 야채를 빈약하게 하면 제 맛이 안 나니까 관건은 빵 두께를 얇게 하는 것이었다. 이 집 버거는 빵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미국을 대표하는 버거 둘이 있는데 동부의 쉑쉑 버거와 서부의 인 앤 아웃 버거(In -N -Out Burger)가 그것이다. 지난 해 뉴욕을 여행하면서 두어 번, 그리고 2주 전 종각 근처에서 쉑쉑 버거를 먹었다. 물론 맛있었지만 내 입맛에는 좀 짜고 기름졌다.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최고의 버거는 약 20년 전 미국 서부 말리부 해안 푸드트럭에서 먹었던 버거인데, 버거 히어로는 그때 먹었던 버거 맛과 가장 흡사했다. 그래서 사장님께 버거 히어로 맛의 특징을 여쭈었더니 ‘쉑쉑과 인 앤 아웃’을 말씀하시면서 버거 히어로는 미국 서부의 ‘인 앤 아웃 버거’ 맛을 지향하신다고 했다. 역시 말리부 푸드 트럭 맛이 느껴진 것이 우연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버거 히어로는 9시에 오픈하는데 보통 11시 전후로 150개 한정 판매 수량이 매진된다고 한다. 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11시 30분에 방문했는데도 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에게 ‘맛있다’의 기준은 ‘다음에 또 오고 싶다.’이다. ‘버거 히어로(BURGER HERO)’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