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그리고 ‘관심을 가져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고, 귀담아 듣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음식이다. 종종 남편이 음식 관련 유튜브 채널을 재미있게 보곤 하는데 음식에 특별한 애정이 없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음식 관련 글들을 읽으면서 음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의 색, 향, 맛, 재료 등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식에는 함께한 가족과 친구가 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으며, 이야기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듯, 음식도 관심을 갖고 먹으니까 더 맛있고, 새로우며 먹는 즐거움이 한결 더해졌다.
미국에서는 사형집행 직전에 사형수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준다고 한다. 법 전문가들은 먹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는 인도적인 예우를 제공하는 것이며 단죄와는 구별되는 사형 집행과정이라고 말한다. 즉 사형수라고 할지라도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형이 집행될 만큼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그의 마지막 식사가 이 세상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심어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만약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음식을 선택하게 될까? 우선 국물이 있는 음식을 생각했다. 그리고 구수한 맛을 떠올렸다. 구수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라면?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시래기 된장국, 입에서 군침이 돈다.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이고, 우거지는 배춧잎을 말린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양의 배추김치와 무 동치미를 만드셨는데, 무 동치미를 만들고 남은 무청을 말려 시래기를 만들어 겨우내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부엌에는 언제라도 시래기 된장국을 끓일 수 있도록 늘 푹 삶은 시래기가 물에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시래기 된장국에 특별한 요리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은 우거지를 쫑쫑 썰어 우거지에 맛이 배도록 어머니께서 만드신 된장에 조물조물한 후 가마솥에 넣는다. 거기다 쌀뜨물과 굵은 멸치 몇 개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마지막에 다진 마늘과 고추,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간을 맞추면 끝이다. 추운 겨울 밖에서 꽁꽁 언 몸으로 들어와도 이머니의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이면 금세 온몸이 따뜻해졌다.
무엇을 먹어도 헛헛하고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국물 음식을 먹는다. 콩나물 해장국, 설렁탕, 추어탕, 사골 우거짓국, 우거지 해장국 등은 국물 음식이 생각날 때 내가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어린 시절 먹었던 어머니의 시래기 된장국을 대신할 만큼 나를 매료시키지는 않는다.
나의 마지막 식사는 어머니께서 끓어 주시던 그 맛의 ‘시래기 된장국’이면 좋겠다.
사람들은 그들의 마지막 식사로 어떤 음식을 선택할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