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그리고 결핍과 집착

by 오월 나무

무화과


과일가게에 무화과가 등장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나의 발걸음은 그 앞에서 멈춘다. 무화과 앞을 그냥 지나친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오늘도 망설임 끝에 무화과 한 상자를 산다. 사실 가족들 중 누구도 무화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남편은 맛이 밍밍하다며 나를 봐서 그냥 하나 먹어준다고 하고, 딸은 건강에 좋은 과일이라는 말에 겨우 하나를 먹고 만다. 무화과 한 박스는 오롯이 나 혼자 먹어야 한다. 맛있는 무화과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무화과를 잼으로 만들거나 말려서 팔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무화과 요거트를 팔길래 사서 먹었는데 맛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결핍


맛이 특별하지도 않고 가족들도 좋아하지 않는 무화과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내 고향 작은 섬에서는 항상 과일이 귀했다. 봄에는 밭에서 기른 토마토와 딸기를 조금 맛보는 것이 전부였고, 한여름에는 우물에 둥둥 띄운 수박이나 참외가 고작이었다. 가을이 되면 콩 타작을 하고 난 후 도리깨질로 잘 익은 콩깍지에서 멀리까지 튀어나간 콩을 주워 모아, 육지에서 온 홍시 장수에게 달려갔다. 어린 시절엔 늘 과일이 부족했고 과일을 맘껏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과일이 귀하다 보니 동네에 있는 몇 그루 안 되는 과일나무들은 늘 나의 눈길을 끌었다. 뒷집의 앵두나무와 살구나무, 옆집의 감나무, 할머니 댁으로 가는 골목길 어귀에서 보이던 기와집의 무화과나무에서 과일이 익어갈 무렵이면 난 그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다. 과일나무의 가지들이 담장을 넘어 길까지 뻗어 있으면 그 가지에 매달린 과일들은 이미 그 집 소유가 아니었다.

무화과가 익어갈 즈음 나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할머니 댁으로 가는 골목길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슬쩍 고개를 들어 내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무화과를 살폈다. 마침 끝이 연한 분홍색을 띠고 있는 무화과를 발견하면 다음 날부턴 매일 그 골목길 어귀를 찾아갔다. 무화과 끝의 분홍색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했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그 무화과를 먼저 따 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기다리지 못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려 그곳으로 몰래 가서 무화과를 따 먹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몰래 따 먹던 무화과의 맛은 시큼하고도 달콤했으며 묘한 긴장의 맛까지 더해졌다.


집착


어른이 된 후 다양한 과일들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계절과 무관하게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고, 열대과일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무화과 사랑은 변함이 없다. 무화과는 보관이 어려운 과일이라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는 수 없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나의 무화과 사랑이 애착을 넘어 집착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집착은 결핍에서 비롯되는데 어린 시절 담장을 넘어온 남의 집 무화과 나뭇가지에서 몰래 따 먹어야 했던 무화과의 기억이 애착을 넘어 집착으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란 상태’를 말하는데, 흔히 ‘경제적 결핍’이나 ‘애정결핍’이라는 복합어로 사용된다. 결핍의 객관적 기준은 없다. 개개인의 성장배경이나 타고난 기질로 형성된 가치관에 의해 결핍의 기준은 달라진다. 같은 경제적 상황도 어떤 이는 결핍으로, 어떤 이는 풍요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애정의 문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는 애정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핍이 되고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집착으로 인한 괴로움을 경험한다. 집착은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남보다 더 잘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비교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심성이 아닐까. 그래서 남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해야 하고, 누구보다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늘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 이러한 집착은 궁극에는 자신을 병들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마저 불행하게 만든다. 집착이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을 뜻하는데,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법륜 스님의 글을 읽으며 집착의 고리를 끊어낼 실마리를 생각해 보았다. 결핍은 상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채워질 때 치유될 수 있고, 그때서야 비로소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인생(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중)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에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내가 특별할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남보다 잘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원한다면

마음을 가볍게 가지기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 것 아닌 줄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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