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조개국,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에서

by 오월 나무

정수리에 꽂히던 한여름의 뙤약볕이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어 가고,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하얀 모래사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열 두세 살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손에는 자신들의 몸집만큼 큰 빨간 고무대야와 갱조개를 잡을 때 쓸 얼기설기 짠 작은 대나무 키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변변한 그늘이 없는 섬마을 소녀들의 피부는 갈색으로 반짝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맘 때가 되면 으레껏 바다로 향하는 동네 길목으로 소녀들이 모여들었다.

그 시절에 사용했던 갱조개 잡이 키를 찾을 수가 없어서 비슷한 모양을 선택했는데, 내가 썼던 것은 모래가 잘 빠지도록 이것보다 훨씬 얼기설기한 모양이었다.

“숙희야~, 혜란아~ , 선희야~, 정희야~ 갱조개 잡으러 가자!”


내가 살았던 작은 섬은 삼봉산을 가운데 두고 네 마을이 빙 둘러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각 마을을 1구, 2구, 3구, 4구라고 불렀고, 내가 사는 동네는 그 중에서 3구였다. 평평한 땅이 귀한 섬마을이라 경사진 땅에 층층이 지은 집은 친퀘테레나 감천문화마을처럼 근사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정다웠다. 작은 골목길을 나와 바다를 향해 있는 마을 어귀에 모인 소녀들은 맨발이었다. 금세 바다로 향할 참이라 보관이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신지 않는 편이 나았다.


마을 어귀를 빠져나와 시원하게 쭉 뻗은 농로(農路)로 접어들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섬마을이라 바다를 둑으로 막아 간척(干拓)을 하고, 그 안의 물을 빼내어 육지로 만들어 그곳에 논농사나 밭농사를 지었는데, 그렇게 만든 둑이 방파제가 되고 농로(農路)가 되었다. 반듯하게 뻗은 그 길 위를 소녀들이 물결치듯 선을 그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농로 오른쪽에는 갯펄에서 자라는 녹황색 짠드박(바다 잔디)이 가지런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고, 왼쪽으로는 이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잎이 무성해진 콩밭과 치렁치렁 줄기를 뻗고 있는 고구마 밭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르익어 가는 여름을 배경으로 그녀들의 노랫소리와 재잘거림이 싱그럽게 살아 움직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오후, 소녀들이 썰물처럼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소녀들은 농로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바다 어귀는 뻘밭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여름 볕에 달궈진 모래가 소녀들의 맨발 아래에서 사각거렸다.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고, 햇볕에 데워져 뜨듯했다.


십여분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때인가부터 발바닥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래 바로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갱조개가 발에 밟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녀들은 최대한 물 가까이 가서 얼기설기 짠 작은 대나무 키로 모랫바닥을 훑었다. 1cm 정도 아래만 훑어도 갱조개가 무더기로 잡혔다. 갱조개와 모래가 섞인 키를 바닷물에 담궈 위아래로 흔들어 모래를 빼내고, 남은 갱조개를 빨간 대야에 담았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큰 대야에 갱조개가 가득 찼다.

똬리

갱조개가 담긴 대야를 머리에 이고 돌아가야 하니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되었다. 소녀들은 수건으로 똬리를 틀어 머리에 얹고, 갱조개가 담긴 대야를 힘껏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그 시간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저녁에 온식구가 맛있는 갱조개국과 갱조개회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 무거운 갱조개 대야를 머리에 인 소녀들의 목이 짧아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녀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서쪽 하늘에 해는 산과 한 뼘 거리에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야에 물을 붓고 소금을 넣어 조개가 머금고 있는 모래나 뻘을 해감했다. 그런 다음 갱조개를 두손으로 돌려가며 북북 문지르고 비벼서 씻고 헹구기를 서너 차례 한 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큰 주걱으로 저어가며 삶았다. 주걱으로 잘 저어주어야 갱조개의 입이 잘 열리고 조개껍질에 붙어 있는 알맹이도 잘 떨어져 분리가 되었다. 갱조개의 입이 모두 벌어지고 뽀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오면 국물과 조개를 분리해서 걸렀다. 껍질에서 이미 떨어져 나온 알맹이도 있지만, 아직 껍질에 붙어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알맹이를 껍질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얼기설기 짠 체에 삶은 갱조개를 담고 위아래로 까부르면 껍질에서 알맹이가 떨어지고, 그 알맹이는 체 아래 놓인 그릇에 떨어져 소복이 쌓였다. 이렇게 하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껍질에 붙어 있는 알맹이는 일일이 손으로 떼서 입으로도 넣고, 그리고 그릇에도 담았다.

갱조개국

이제 갱조개국을 끓일 차례였다. 큰 가마솥에 갱조개를 삶은 뽀얀 국물과 갱조개 알맹이를 아낌없이 넣고 끓이다가,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납작납작 썬 애호박과 슥슥 뜯어 놓은 연한 고구마 잎, 그리고 부추를 넣고 살짝만 익혔다. 아궁이의 불을 끄고 마지막에 풋고추와 마늘만 넣으면 맛있는 갱조개국이 완성됐다. 사실 알맹이가 푸짐하고 국물이 진한 갱조개국은 그 자체로 너무 맛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넣지 않아도 됐지만, 뽀얀 국물과 파릇한 야채 색이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입안 가득 씹히는 보드랍고 쫄깃한 갱조개와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그 시절 내가 먹었던 갱조개국은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많은 돈을 지불하면 제법 넉넉한 알맹이와 그럴듯한 국물의 갱조개국을 맛볼 수는 있겠지만, 청정했던 그 시절의 갱조개국 맛을 결코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 옛날 생각에 섬진강 인근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주문한 갱조개국을 먹게 되는데, 부추가 둥둥 떠 있는 멀건 국물에 조개 몇 개가 전부인 갱조개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이것이 갱조개국의 참맛이라고 오해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어릴 때 이미 호사를 누린 내 입맛을 어떤 갱조개국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갱조개회

갱조개국에 푸짐하게 넣고도 그릇에 수북이 쌓여 있는 알맹이로 갱조개 회를 만들었다. 애호박은 채썰어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치고, 부추는 적당한 길이로 썰었다. 그리고 고추장, 식초, 마늘, 설탕, 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 후 갱조개와 재료들을 섞어 버무려 주면 맛있는 갱조개회가 만들어졌다. 어린시절 내가 경험한 회는 항상 무침이었다. 매콤새콤달콤한 양념이 폭 배인 갱조개회, 군침이 돈다.



* 갱조개는 재첩의 하동 사투리로 강조개에서 유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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