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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Oct 17. 2022

문화와 지식의 창고가 된,  삼례 양곡창고

‘완주시티투어'를 마치고

  ‘완주 시티투어’를 했다.

 오랜 친구들과 ‘완주시티투어’를 했다. ‘완주시티투어’는 하루 일정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에 운영되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4월 16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되었고, 하반기에는 9월 3일부터 11월 19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전 프로그램을 문화해설사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세세한 내용까지 알 수 있어서 여행의 풍부함을 더해 주었다. '완주 시티투어'는 9시 30분 익산역을 출발하여 삼례문화예술촌을 관람한 후, 새참수레에서 점심을 먹고, 위봉산성과 오성한옥마을을 관광한 후 5시 30분쯤 다시 익산역 도착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삼례문화예술촌 입구

 삼례 양곡창고가 삼례문화예술촌으로 다시 탄생

 조선시대 삼례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만경강 주변 평야의 수확물이 집산되는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914년 삼례역이 생겨 철도로 쌀을 군산으로 실어낼 수 있게 되자, 일본은 이 지역의 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관하여 일본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 1920년대 초 삼례역 앞에 양곡창고를 지었다. 삼례양곡창고는 일본식 창고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며 내구성이 좋게 지어졌다. 양곡의 보관을 최대화하기 위한 공간 활용 건축법으로 지어져 창고 가운데 기둥이나 내력벽이 없어도 하중을 견디도록 목조 트러스를 세웠으며, 습기로부터 양곡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목재로 빗살무늬 형태의 시설을 만들어 내벽에 설치했다. 높은 위치에 낸 환기창, 지붕의 모습 등도 근대 일본식 창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삼례 양곡창고는 해방 후 농협의 창고로 활용되다가 2010년 완주군 관할이 되었다. 2013년 완주시는 일제강점기의 수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 삼례 양곡창고를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재탄생시켰다.

제1전시실 ‘사계의 향연전(겨울)’ - <모나리자, 르네상스>

 곡식창고에서 만난 르네상스 미술 작품

 과거에 곡식창고로 쓰였던 제1창고인 제1전시실에서는 ‘사계의 향연전(겨울)’인 <모나리자, 르네상스> 전이 열리고 있었다. 창고(전시관)로 들어섰을 때 르네상스 3대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다비드상’, 그리고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완주에 웬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한 후 관계자에게 슬쩍 그 이유를 물었는데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 주셨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직접 원작품을 보거나, 아니면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세계적인 미술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더러 있지만, 지방에서는 그런 기회가 적다. 그래서 이곳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해서 세계 명화 레플리카(원작을 모방하여 재현하는 것) 특별기획전시를 하게 되었다. 올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주제로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봄(1~3월)에는 모네, 여름(4~6월)에는 르누아르, 가을(7~9월)에는 앙리 마티스, 겨울(10~12월)에는 모나리자, 르네상스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올해 기획한 이 전시회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특히 이 지역사회 주민들이 매우 좋아하고 만족해서 보람을 느낀다.’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이러한 전시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는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이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내가 느꼈던 낯섦과 생경함은 나의 짧고 얕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판단해버린 가벼움이었던 것이다.

제3전시실, 전라북도 지역작가전 다섯 번째 ‘최분아 작가전 - 겸허함의 향기로’

가마니 창고에서 피어난 겸허한 향기 ‘최분아 작가전, 겸허함의 향기로’ - 지역화가 미술 작품전

 과거에 가마니 창고로 쓰였던 제2창고인 제3전시실에서는 전라북도 지역작가전 다섯 번째로 ‘최분아 작가전-겸허함의 향기로’ 전이 열리고 있었다. 최분아 작가의 그림에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꽃들이 화려한 장식이나 섬세한 표현은 생략되고 단순화된 구성과 색상으로 표현되었다. 최분아 작가는 꽃 이미지를 통해서 행복함과 따스한 향기를 전하고, 늘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겸허한 향기를 그림에 담고자 했다. 그림 속에서 원형으로 단순화되어 동글동글 피어난 꽃들은 따스한 색채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이 드는 부엌에 걸어두고 오가며 바라보면 그림 속 꽃들과 미소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들이었다.

삼례책마을 전경

 지식과 지혜의 창고가 된 양곡안전관리 창고 - 책마을

 삼례책마을 역시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양곡창고가 지식의 창고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곳은 1999년 설립한 영월책박물관이 2013년 완주군 삼례로 이전하면서 삼례책박물관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기획전시를 중심으로 북페스티벌과 학술세미나, 고서대학 등 크고 작은 고서 관련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삼례책마을 안에는 책박물관, 북갤러리, 북하우스 등이 있는데 완주시티투어 프로그램에는 북하우스에 있는 삼례 헌책방과 책마을 카페 탐방이 있었다.


 삼례 헌책방에 들어섰을 때 빽빽하게 들어선 책꽂이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헌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래된 책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제목에 한자가 섞인 책들이 많았는데 1970~80년대 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전공과 관련된 책들이나 과거에 읽었던 책들도 눈에 제법 띄었다. 그 책들이 헌책방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며 새삼 내 나이를 다시 실감했다.

그림책박물관 입구
그림책박물관 내부

 동심을 만날 수 있는 양곡창고 - 그림책박물관

 그림책박물관 입구, 건물 벽에 ‘양곡안전관리’라는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역시 과거에 양곡창고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고 투박한 건물의 외관과 달리 건물의 출입문 위에 동심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공간에 1940년에 영국의 동화작가 그레이브스가 완성한 ‘요정과 마법의 숲’에 등장하는 캐릭터 인형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 동화는 2차 대전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가 이곳 그림책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림책박물관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 3대 거장’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랜돌프 칼데콧, 월터 크레인 전이 열리고 있다.

 

 남은 이야기

 그 외 삼례문화예술촌 제4전시관에서는 지역공동체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완주시티투어’ 프로그램에 포함된 위봉산성은 2019년 BTS 썸머패키지로 유명해진 곳이고, 현대식 건축물과 고택의 조화가 아름다운 아원 고택과 소양 고택이 있는 오성 한옥마을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당일에도 그곳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완주의 맛집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이 빠지면 맥이 빠진다. 오전에 두 시간 남짓 투어를 했는데 문화해설사의 넘치는 열정에 숨 쉴 틈 없이 투어가 진행되었다. 호기심도 피곤함과 시장기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다행히 11시 30분쯤, 완주 5미 중 하나인 로컬푸드 식당 ‘새참수레’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슬로우 푸드 농가레스토랑인 이곳에서는 정갈하고 건강한 먹거리로 마련된 점심 한 끼가 12,000원(원래 13,000원인데 투어 참가자는 1,000원 할인을 받는다.)이다. 맛있는 음식에 넋을 놓아 버렸는지 출발 시간도 놓칠 뻔했다.

점심을 먹었던 로컬 식당 '새참수레'

 오후 5시 30분, ‘완주시티투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익산역에서 투어 버스를 내렸다. 기차는 7시 5분 출발이어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 두부 요리를 하는 식당을 검색하다가 그냥 큰 기대 없이 익산역 동광장에서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갔다. 두서너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손님이 제법 많은 ‘토속식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맙소사!!!’ 음식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데, 조기매운탕이 1인분에 만 원, 값이 너무 저렴하다. ‘새참수레’에서 푸짐하게 먹은 점심과 간식으로 준비해 간 고구마, 삶은 달걀, 과일까지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한 우리는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그 식당의 파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사고 싶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마지막 남은 파김치 한 접시 정도를 포장해 주셨다.

‘세상에나! 음식 맛이 최고인 이 식당 사장님 인심은 더욱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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