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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Sep 13. 2022

우리의 여행을 좌지우지한  넥쏘(NEXO), 수소차

 여행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한 자동차는 필수이지만, 그렇다고 자동차가 우리의 여정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이번 여행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여정을 결정해야만 했다.


 2006년 SUV 경유차를 구입했다. 당시에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차량 구입에까지 연결지어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경유차가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성과 남편의 기호인 SUV 여부에만 집중해서 차를 샀었던 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환경문제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우리 차가 대기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노후 경유차 매연 저감장치 부착도 고려해 보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정부의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사업의 혜택을 이용하여 폐차를 결정하고 신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SUV 구입을 목표로 국내외 여러 브랜드의 SUV 차량을 둘러보았으나 결정이 쉽지 않았다. 2020년 3월, 코로나로 인해 마음에 드는 차는 출고를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외제차는 고장이 날 경우 수리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수리기간도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수소차인 넥쏘(NEXO)를 언급했다.


 친환경 자동차, 넥쏘(NEXO)

 수소차(수소 전기차)는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대신 연료전지(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키고, 이때 발생하는 전기)를 이용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를 말한다. 친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에너지를 만든 후 이산화탄소 등의 탄화수소물이 아닌 H2O(물)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넥쏘(NEXO) 구매 시 정부의 지원

 정부가 2019년 1월 18일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르면, 환경부는 친환경 자동차 구매 보조금을 1대당 국비·지방비를 포함해 수소차 최대 36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2018년 14곳인 수소 충전소는 2040년까지 1200개로 확대키로 했으며, 수소 공급은 2018년 연 13만 t에서 2040년 연 526만 t으로 늘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2021. 03. 26.]

 넥쏘(NEXO), ‘Why not?’

 친환경차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나니, 다른 차의 구매를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넥쏘(NEXO)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수소 충전소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2020년 3월, 우리가 차를 살 당시 서울에는 수소 충전소가 여의도, 상암, 양재 등 단 세 군데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집과 25분 남짓 거리인 경기도 하남시에 한 군데 있었다. 나는 이미 퇴직을 한 상태이고, 아이들 둘이 모두 외국에 있었으며 남편은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출퇴근이라 충전소 문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장거리 여행

 이번 추석 연휴 동안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 내가 여정을 짜고 있을 때 남편은 수소 충전소에 몰두해 있었다. 수소차는 약 4만 원 정도 충전하면 600KM를 주행할 수 있어서 연비면에서 탁월하다. 그런데 2박 3일 여정에서 600킬로미터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한 번 충전은 불가피했다. 강원도는 수소 충전 취약지역이다. 속초 충전소는 늘 대기차가 많아서 충전하려면 평균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래도 신이 우리 편이기를 기대하며 속초에서 충천을 하기로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중간에 있는 춘천이나 원주 충전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원주는 거리상 너무 돌아가는 곳이라 춘천도 염두에 두고 여정을 짰다. 자칫 충전을 못하게 되어 여행 도중 집으로 돌아와야 하거나 차를 견인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했다.

전국의 수소 충전소

 '집-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속초 숙소(1박)-속초에서 수소 충전-강릉 경포호-안목항-속초 숙소(2박)-양양 하조대-속초 중앙시장 – 집'. 처음 여행 계획은 이랬다. 그런데 아무래도 충전소 상황을 알 수 없어서 여차하면 중간에 집으로 돌아올 각오를 하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인 강릉을 먼저 가기로 했다.


 우연히 브런치 글을 보다가 강릉에서 한 달 살고 온 작가님이 추천하신 강릉 맛집 ‘강릉 9남매 두부집’에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명절이어서인지 30분 이상 줄을 서야 했는데 충분히 보상이 될만한 맛이었다. 이어 경포대와 안목항에 다녀온 후 역시 브런치 작가님이 추천하신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강릉 송고버섯 피자'와 강릉 지역에서 재배한 쌀과 홉으로 만들고 '미노리, 즈므' 등 그곳 지역명으로 이름을 붙인 수제 맥주 세트인 버드나무 샘플러를 맛보았는데 독특한 향이 새로웠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남편은 수소 충전소를 체크하고 있었던지 식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속초 충전소가 고장이라는 난감한 소식을 전했고, 자칫하면 내일 집으로 돌아갈 각오를 했다.


 대관령에도 수소 충전소가 있다고요?

 다음 날 현지 친구의 추천으로 ‘응골 동치미 막국수’에서 담백한 감자 옹심이를 먹고, 수소 연료를 아끼기 위해 숙소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고성 화암사 계곡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와 딸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남편은 속앓이를 하고 있었는지 검색을 하던 중 대관령에 수소 충전소가 있다고 말했다.  

“엉? 아니, 그걸 지금 알았다는 말씀? 지금 대관령 충전소에 전화해 볼게요.”

검색의 달인 남편도 대관령에 충전소가 있다는 것을 놓친 것이었다. 어제 알았었더라면 강릉에서 속초 숙소로 오는 길에 충천을 하면 됐었다. 다행히 대관령 충전소에서는 충전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곳은 왕복 160KM 거리였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재미있고 스릴? 있었던 여행

 가는 길에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고 대관령 초입에서부터는 짙은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충전소를 겨우 찾아 비옷을 입고 우산까지 쓴 충전소 직원을 보았을 때는 마치 우리가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570KM 충전을 하고 나니 날씨와 달리 남편의 얼굴이 활짝 개었다. 그 기분을 이어 계획에 없던 ‘횡성한우마을’에서 소고기를 먹으며, 소고기는 우리의 운명인가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식사 후 가까이 있는 삼양목장에 들렀는데 안개와 비로 입장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입구의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속초 아이

 속초에 도착하여 3개월 전에 오픈했다는 속초 아이에 갔는데 대기가 한 시간 이상이라 가볍게 해변을 산책하다가 버스킹 중인 가수의 노래를 즐겼다. 저녁을 먹기 위해 속초 중앙시장에 갔는데 그곳도 제주의 올레시장이나 여수의 중앙시장과 비슷한 모양과 구조로 획일화되어 있었고, 역시 유명세를 탄 음식점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꼬마김밥, 오징어순대, 닭강정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먹었는데 역시 맛은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했고 반 이상을 남겼다.


 다음 날 아침, 어제 갔던 ‘응골 동치미 막국수’를 다시 찾아 감자옹심이, 감자전, 메일국수를 먹었다 고성의 친구 집에 가면 늘 가는 곳인데 언제 먹어도 변함이 없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식사 후 하조대 써피 비치로 향했다. 매스컴을 통해서 여러 차례 본 써피 비치는 실제로 가 보니 해변이 길고 모래가 부드러운 하조대 해수욕장에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두 그룹이 서핑을 배우고 있었는데 활력과 젊음이 부러워 괜스레 큰 소리로 써퍼들을 응원했다.  

하조대 써피비치

 속초를 출발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산 길을 걸어가야 하는 6코스를 거쳐 자작나무 숲에 이르렀다. 곧게 뻗어 줄지어 선 하얀 자작나무와 바람에 속살거리는 자작나무 잎들, 숲 속에 난 산책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확인해 보니 아직도 230KM는 더 달릴 수 있게 수소 연료가 남아 있었다. 별일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재난 여행이 될 뻔했다’고 남편은 웃으며 농담을 했다. 수소 충전소 문제로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스릴도 있었고, 여정에 변화가 생겨 다채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이야기가 더 풍부해지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 여행도 인생도 미리 치밀하게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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