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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Nov 05. 2022

둘째가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1

 학생들이 학원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발걸음에 힘이 없고 어깨도 쳐저있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학원 간판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요즘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학원 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육은 이미 나의 관심 밖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2년을 살고 귀국을 했을 때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였다. 캐나다에 비해 우리나라의 교과학습내용은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학습 수준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수학이나 과학, 국어 등의 교과목에 한해 캐나다에서도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맞춰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집 두 아이는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관련된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둘째는 그곳 학교 공부를 하는 틈틈이 우리 말에 대한 갈증을 느꼈는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유일하게 가지고 간 한국어 책인 어린이 문학전집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학습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부할 내용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까지 둘째가 좋아하는 과학은 학교의 특별 프로그램과 사교육으로 공부를 했고, 하루빨리 학습 수준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 수학은 하는 수 없이 사교육을 선택했다. 그리고 영어는 독서, 쓰기, 말하기, 토론 위주로 공부를 했다. 둘째가 좋아하는 독서는 본인이 알아서 꾸준히 했다.


 큰 아이가 외고 국제반을 다니고 있을 때라 둘째도 외고 국제반에 들어가서 유학을 가면 어떨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외고의 교육과정에서는 둘째가 좋아하는 과학 공부를 깊이 있게 할 수 없어서 과고 진학을 고려했는데, 과고의 교육과정에서는 남편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문사회 과정의 교과목이 많지 않아서 결정이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그해에 하0고등학교 제1기 입학생 모집공고가 있었다. 남편과 내가 보기에 하0고의 교육과정은 이상적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둘째의 적성과 흥미에도 맞다고 생각되었다. 하0고 1기는 내신성적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하여 학생을 선발했는데 운이 좋게도 둘째가 그러한 입학전형에 부합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합격을 했다.


 입학 후 둘째는 신이 나서 과학 동아리를 만드는데 열정을 쏟았고, 교과공부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대체로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학부모 모임이 만들어진다. 누가 어떻게 모임을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불안과 걱정을 가득 안고 혹시라도 자녀의 성적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놓칠까 봐 만사를 제쳐 놓고 모임에 참석하려고 했다. 특히 자녀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는 더욱 그랬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째는 중간고사를 4월에 치렀고, 5월에는 모의고사가 있었다. 


 4월 중간고사가 끝난 즈음 학부모 모임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모임에 참석한 어머니들 중 일부는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다 봤거나, 심지어 문제까지 풀어보고, 각 문제의 난이도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저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라고 생각하고 둘째를 자유롭게 두었다. 그 후 둘째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사실 나는 둘째가 모의고사를 보는 줄도 몰랐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첫째가 미국 대학을 갔기 때문에 나는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후에 알았다. ‘고등학교 1학년 첫 모의고사가 대입 수능 성적이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모의고사는 평소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라 다른 과목들은 1등급을 받았는데 언어영역이 ‘5등급’이었다. 둘째에게 원인을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시험을 보다가 졸려서 잤다는 것이다. 설령 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고 한들 3등급 이상의 실력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둘째의 고1 첫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어머니들은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보낸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 집에서 다닐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는 어머니로부터 자기 아들이 다닐 학원에서 언어영역 공부 팀을 짜고 있는데 둘째도 같이 하겠느냐는 제안을 하는 전화가 왔다. 

 “영0 어머니께서 너 언어영역 학원 다니지 않겠냐고 연락하셨는데 너도 거기 가서 공부하면 어때? 5등급이면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저 학원 안 갈 거예요. 학원에 간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엄마랑 공부할래요.”

 “뭐? 나랑 언어영역을 공부한다고? 너 가르치려면 내가 공부를 엄청 해야 하는데, 그거 너무 힘들어. 난 싫어. 그리고 너 나랑 공부하면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수도 있고, 그러다 서로 사이만 나빠질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냥 엄마랑 언어영역 공부할게요. 대치동 학원에 간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대치동 학원에 간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라는 둘째 말에 백 퍼센트 동의를 하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엄마의 실력을 철석같이 믿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둘째의 성격을 아는지라 하는 수 없이 같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학습방법과 뒷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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