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hard landing)은 항공기가 급격히 고도를 낮추면서 활주로에 진입하거나 착륙하는 것을 의미하고, 연착륙(soft landing)은 비행기나 우주선이 기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활주로에 서서히 착륙하거나 진입하는 기법을 가리키는 우주, 항공 용어이다. 경제 관련 맥락에서 사용할 때에는 이러한 특질에 맞추어 경제 상황을 비유하는데 이 용어를 사용한다. 경제적인 맥락에서 경착륙이란 마치 놀이기구의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경기가 갑자기 냉각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는 등 급격하고 격심한 경기 변동을 일컫는 용어로 대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연착륙이란 경기가 고성장에서 급격한 경기침체나 실업증가 등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안정기에 접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경착륙을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도 경착륙을 조심하고 연착륙을 시도해야 할 시기가 있다. 그때가 언제일까? 물론 사람마다 경착륙의 위기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2023년 2월 말,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였다. 남편은 퇴직하기 일 년 전부터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간간이 예비 퇴직자를 위한 연수를 다녀오곤 했다. 연수에서는 예비 퇴직자를 위해서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나눠주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남편이 연수를 마치고 올 때마다 물어보았다.
“연수 어땠어요? 재미있었어요?”
“응, 괜찮았어.”
“주로 어떤 내용?”
“음… 주로 ‘퇴직 후에 어떻게 하면 아내와 다투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가?’하는 그런 내용들이야.”
“다른 내용은 없었어요?”
“그 외에도 여러 내용들이 있지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는 ‘퇴직 후 아내와 잘 지내려면’인 것 같아.”
그래서인지 남편은 퇴직 후에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서로 갈등과 다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을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달랐다.
남편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나 불만이 크게 없는 듯 보였다. 늘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잘해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었을 수도 있고, 직업적인 성공이나 자아성취를 위해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무엇보다 일처리가 빠르고 부지런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자신의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퇴직하는 날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어찌 보면 우직하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나는 ‘남편의 성실한 직장생활이 오히려 퇴직 후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1987년 9월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편은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직장을 떠나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남편이 예비 퇴직자 연수를 다녀오곤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으로는 퇴직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던 중 남편이 말했다.
“올 11월에 00 단체에서 특강을 해 줄 수 있냐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신 마음에 달려있지만 나는 무조건 찬성이에요.”
“무조건 찬성?”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에 갑자기 일을 멈추면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뭐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일주일에 3일 이상 일하면 얽매이게 되어서 그것이 일이 될 수 있지만, 2일 정도 일하는 것은 적절하게 생활에 변화도 되고 긴장감도 줄 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당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요. 이건 어디까지 내 생각이니까 참고하시길…”
내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남편은 주 이틀, 수요일과 목요일에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루 이상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퇴직 후의 삶이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바빠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괜한 염려를 하고 퇴직 후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활기가 있어 보여서 좋아 보이기도 한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가끔은 나의 권유가 남편이 퇴직 후의 삶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자기, 브레이크는 서서히 잘 밟고 있는 거죠?”
남편이 퇴직 후에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을 잘하고 있는지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진다. 내가 생각하는 연착륙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혹시 남편에게 더 속도를 내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도 읽지 못했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던 분들께 본의 아니게 마음을 쓰시게 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시 글을 쓰려고 하니 왠지 어색하기도 합니다. 힘껏 달리다 갑자기 멈추는 것만큼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속도를 잘 조절해 가며 쓰겠습니다. 삶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