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별명은 ‘아프리카 깜둥이’였다. 짭조름한 갯바람과 그늘이 많지 않은 섬마을의 강한 햇살에 내 피부는 늘 까맣게 타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내 별명이 싫었다. 친구들은 제법 똘똘했던 나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사내아이들이 나를 골려주고 싶을 때 ‘아프리까 깜둥이’라고 부르며 놀리고 도망갔다. 화가 났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내 피부는 늘 까맸으니까.
내 바로 위 언니의 별명은 ‘깜씨’였다. 다른 언니들이나, 오빠, 그리고 동생도 내가 모르고 있지만 그와 비슷한 별명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섬에 살았기 때문에 피부색이 까만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섬에 산다고 해서 모두 피부색이 까매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들의 피부색이 유난히 까맸다. 유전적으로 까만 피부색은 하얀 피부색보다 우성이라고 하는데, 부모님 두 분 모두 피부색이 까맸다. 아버지의 피부는 늘 구릿빛이었고, 어머니도 갈색으로 반짝거리는 피부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니까 내 피부색은 부모님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 7남매의 피부색이 모두 그랬다.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에게 까만 피부색을 물려주신 것을 늘 미안해 하신다. 큰 언니께서도 당신의 까만 피부를 못마땅해 하시며 하얀 피부를 부러워하신다. 오죽하면 내가 남편을 우리 가족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큰 언니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남편의 하얀 피부 때문에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큰 언니 그 말은 진심이시다. 남편은 무척 하얀 피부를 갖고 있다. 우리 부부가 여름밤에 불을 끄고 반바지 입고 나란히 누워 있으면 내 발은 보이지 않고, 남편 발만 하얗게 둥둥 떠 있다.
사진 : https://blog.naver.com/mhosq/220770853930
처음으로 내 피부색에 대한 열등감을 조금 없앨 수 있었던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무척 존경했던 국어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일화나 어릴 적 추억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어느 날 한참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계시던 국어 선생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00 좀 봐. 정말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지 않니?”
아마 그때까지 나의 외모에 대해 들었던 가장 큰 칭찬이 아니었을까? 그후 까만 피부가 매력적이라는 말을 아주 간혹 듣기는 했지만 그냥 하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나와 결혼을 한 이유야 많겠지만(ㅎㅎ) ‘나의 피부가 까맣고 팔다리가 길어서,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60세가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남편은 시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시어머님의 하얀 피부색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흑인 병사들과 같이 생활을 한 경험 때문에 피부가 하얀 사람보다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편견을 갖게 된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늘 속았노라고 말한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상당히 의존적이고, 피부가 까맣기 때문에 건강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며 억울해 한다. 키에 비해 긴 팔다리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어머니께서 까만 피부색과 함께 물려주신 유전자다.
캐나다에 잠시 사는 동안 남미에서 온 친구들이 ‘어쩌면 이렇게 태닝이 골고루 자연스럽게 잘 됐냐’며 내 피부색을 많이 부러워했다. 친구들의 그런 반응이 피부색에 대한 나의 컴플랙스를 또 조금 덜어내 주었다.
오늘날 피부색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세계 곳곳에서 많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피부색에 의해 좋고 싫음이 무의식적으로 결정되고,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무조건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십여 년 전, 큰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야기의 맥락은 기억나지 않는데 모임에 참석한 어머니 중 한 명이 무심코 흑인을 일컬어 ‘깜둥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후로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미용을 위해 마스크팩을 사용하는데, 미백 기능 마스크 팩은 필수이고 그 외 기능의 마스크 팩을 곁들어 사용한다. 그러니까 여전히 나는 하얀 피부색을 선호 내지는 선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두 아이들이 모두 결혼할 시기가 되다 보니 가끔 아이들의 배우자에 대한 상상을 무심코 할 때가 있다. 인종이나 종교, 직업, 학력, 외모 등을 떠나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배우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좀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