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공연은 대체로 주중에는 밤 시간에, 주말에는 낮시간에 열린다. 그런데 낮에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 있다. 성남아트센터에서는 낮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매월 셋째 주 목요일 11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마티네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티네’란 프랑스어 ‘마탱(matin:아침)’에서 온 말로 ‘마티네 콘서트’란 낮에 열리는 콘서트를 의미한다. 2년 전, 배우 김석훈 씨가 사회를 맡고 있을 때 친구와 함께 마티네 콘서트에 두 번 갔었다. 올해는 피아니스트 김태영 씨가 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내년에도 그가 사회를 본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10월에, 그리고 지난 12월 15일에 마티네 콘서트에 다녀왔다.
2022년 올해 마티네 콘서트의 주제는 ‘영국으로부터’인데, 12월의 테마는 연말에 어울리는 ‘캐롤의 나라, 영국’이었다.캐롤은 종교를 위해 시작된 음악이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즐기는 음악이 되었는데 환경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날씨가 화창한 나라의 캐롤은 밝고 반짝이는 느낌을 주는 반면, 영국 캐롤의 특징은 전통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했다.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의 ‘성 바올 모음곡’,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등 크리스마스와 겨울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들이 연주되었는데 크리스마스를 미리 즐긴 기분이어서 좋았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휘자였다. 음악회에서 음악을 들었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보고 온 듯한 느낌이 강했다. 2년 전 친구와 함께 마티네 콘서트에 갔을 때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 장한나 씨가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졌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데이비드 이(David Yi)’의 지휘가 눈길을 끌었다.
‘데이비드 이(David Yi)’의 지휘는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전체를 아우르는 악기가 되어 온몸으로 연주를 하는 듯했다. 지휘자의 몸짓과 손짓에서 음악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귀가 아닌 눈으로 음악이 보이는 듯한 신선함이 있었다. 음악은 그의 손끝에서 물결치고, 그의 두 팔에서 모아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던져지며 퍼져 나갔다. 그리고 때로는 깊게 가라앉으며 사라지기도 했다. 음악을 품고 어루만지는 듯한 손짓과, 음악과 더불어 춤추는 듯한 지휘자의 몸짓으로 부드럽게 일렁이는 음악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격정적인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음악에 몰입한 지휘자의 얼굴 근육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오늘 지휘자 어땠어요?”
대답을 머뭇거리다 재촉하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남편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지휘자에 대한 나의 기대는 매우 높아서 웬만해서는…”
“어느 수준이 당신 기대에 부응하는 지휘자인지?”
“우선, 흰머리에 머리숱은 적어야 하고, 가끔은 헝클어진 곱슬머리가 격정적인 몸짓으로 흔들리기도 하는 그런 지휘자가 제격이지. 그리고 지긋한 나이에 약간 몸집이 있어서 중후함이 느껴지는 그런 지휘자?”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ellen11091/222504602668
남편이 말한 지휘자의 모습은 오늘 지휘를 했던 데이비드 이(David Yi)의 젊고 훤칠한 외모와는 사뭇 다르다. 남편의 이상적인 지휘자는 아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나이 든 모습인 것 같다. 35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였고, 이 오케스트라를 세계 최정상으로 만들어 낸 클래식 음악계의 대스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멋진 지휘자의 모습을 대중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20세기 클래식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카라얀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지휘를 지휘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지휘자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다 보니 카라얀 이전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푸르트벵글러는 지휘할 때 몸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이는 카라얀의 지휘 스타일과 굉장히 대조적이다.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지휘자의 손끝과 눈짓에 따라 음악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지휘자마다 음악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서 사람들은 같은 곡도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도 위대하지만, 클래식의 황제 카라얀도 오래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