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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Nov 30. 2022

그녀의 ‘불안’

 며칠 전 지인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이 같은 방향인 지인이 나를 데려다주었다. 밖은 추위를 몰고 올 비가 한바탕 쏟아지는 어두운 밤이었다. 차창의 빗물을 씻어내는 와이퍼 소리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무심한 듯 규칙적으로 들렸다. 마음속 이야기를 내어놓기 좋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래는 지인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퇴직한 지 거의 3년이 되어가는 그녀는 매일이 편안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9시 즈음에 일어나 10시쯤 남편과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남편과의 아침 식사는 대체로 정답다. 오손도손 준비한 아침을 맛있게 먹으며, 오늘 저녁에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까를 부부는 즐겁게 고민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녀의 남편은 식사재를 다듬고 손질하는 것도 즐긴다. 지금은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는 큰 아들이 집에서 출퇴근을 할 때, 매일 아침 그녀의 남편은 아들을 위해 건강하고 정갈한 아침 식탁을 직접 차려주었다. 함께 살고 있는 둘째 아들도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싱싱한 해산물과 생선을 둘째 아들이 직접 주문하기도 한다. 온 가족이 먹는 일에 진심이고, 그래서 함께 하는 식탁은 행복하고 즐겁다.


 그녀의 집에는 엄마인 멍순이, 딸인 소심이라는 강아지 두 마리와, 아들이 길에서 데리고 온 양희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을 돌봐 주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그녀에게는 행복이다. 둘째 아들이 처음 멍순이를 데리고 왔을 때 그녀는 아들을 몹시 나무랐지만, 지금은 그녀가 더 멍순이와 소심이, 그리고 양희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녀는 멍순이와 소심이, 그리고 양희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하게 웃었다. 도도한 양희의 매력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며 핸드폰을 열어 사진까지 보여 주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친구들과 골프를 즐긴다. 그녀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삼 년 전쯤부터는 동호회를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는 요가와 걷기를 꾸준히 했었다. 한 마디로 그녀의 삶에는 늘 운동이 함께 했었다. 그녀는 또한 정기적으로 몇 그룹의 친구들과 모임을 갖거나, 그들과 여행을 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녀는 건강하고 성실한 가족, 그리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운동을 즐기며 친구들과 꾸준히 관계를 지속하는 그녀 개인의 삶도 있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소소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감사한 나날들이다. 


 그런데 가끔 그녀는 불안을 느낀다. 

‘나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뭔가 해야 될 것이 있는데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들은 다 하고 있는데, 나만 안 하고 있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태평하게 살다가 죽을 때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문득문득 이런 불안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뎅~’하고 소리를 내며 파문을 일으키면, 가슴속에선 한바탕 차가운 회오리가 일고, ‘쿵~’하고 그녀의 심장이 내려앉으며 잠시 요동친다. 


 일상이 평화롭고 행복한 그녀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이 불안은 무엇일까? 그녀는 왜 불안한 것일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능적으로 요즘 나의 불안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특별한 불안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막연한 불안이 나에게로 전이되는 듯했다. 왠지 ‘불안이 없다는 것을 불안해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는가는 개인의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들이 때로는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또 때로는 누구나 다 아는 원론적인 것이어서 하나마나 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최근 한 브런치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신 고미숙 작가님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읽다가 메모해 둔 내용이 있는데, 그녀의 ‘불안’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아 함께 적어 보았다.


 우리는 욕망하고, 해명하고, 해방하고, 자신을 알고자 애쓰고, 행동한다. 그리고 문득 그리스적 질문을 듣는다. 너에게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다시 침묵. 이 질문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대답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질문은 길들이기 어려운 새와도 같다. 붙잡으려고 하면 날아가 버린다. 그냥 이 질문을 지닌 채로 살아가는 편이 낫다. 답이 없는 질문을 평생 대면하는 것이다. 굳이 서두른다면 어떤 식으로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서두르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침묵을 즐기는 게 낫다. 철학의 중심에서는 어떤 말도, 어떤 개념도 움직이지 않는다. 한 줌의 바람이 이 질문을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다. 무슨 소리인가가 들린다. 하나의 관계가 끊어진다. 이제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철학의 중심에서 부는 바람이다. 우주적인 차원을 획득한, 존재하는 내가 내수는 숨이다.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늘에 구름이 한 점 지나간다. 참으로 아름다운 구름이다.

(파스칼 샤보, ‘논 피니토 : 미완의 철학’, 정기헌 옮김, 함께읽는책, 2014, 97~98쪽)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42~43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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