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생 현수 씨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지금은 세 아이를 둔 아빠입니다. 제가 현수 씨를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월 말 해외입양인을 위한 지원사업과 해외원조 사업을 하는 비영리 기구인 둥지를 통해서입니다.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분들의 한국어 교육 봉사를 2022년 2월부터 하고 있는데, 올해 2월부터는 현수 씨의 한국어 공부도 돕게 되어 지금은 두 분에게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업 첫날 제가 현수 씨에게 물었습니다.
“현수 씨, 왜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대구에 사시는 엄마와 여동생들을 만나 통역 없이 대화를 하고 싶어서요.”
현수 씨는 입양된 후 처음으로 2018년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때는 통역하는 사람을 통해서 어머니와 소통을 했기 때문에 현수 씨는 어머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어머니를 만날 때는 서툴지만 한국어로 어머니와 직접 대화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9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요즘은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왕복 두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오간다고 했습니다. 현수 씨의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저는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수업을 두 번으로 늘렸습니다. 통역 없이 현수 씨가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현수 씨, 어머니를 만났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알려 주시면 그것을 중심으로 수업내용을 준비할게요.”
“좋아요. 그렇게 하면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고 현수 씨는 번역 앱을 이용해서 다소 어색한 표현이 있는 아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10 things to talk to my Mom about
엄마,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노래가 뭐예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당신이 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주로 아침으로 무엇을 드시나요?
당신은 한국 밖으로 여행해 본 적이 있나요? 어디?
여러분은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하나요?
당신이 손자들에게 해줄 조언 중 하나는 무엇인가요?
‘엄마는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아침에는 무엇을 드시는지, 좋아하는 장소나 음식, 노래는 무엇인지…’ 현수 씨가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메시지였습니다.
현수 씨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올해 10월에 한국에 옵니다. 그는 이미 비행기표를 끊고 하루하루 날짜를 카운트다운하고 있다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이 좋아서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한다는 현수 씨는 작년에 직접 김장을 15 포기나 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현수 씨, 10월에 한국에 오면 어머니와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지 않을 거예요. 엄마의 일상생활을 함께 하고 싶어요. 엄마가 주무시는 시간에 저도 자고, 일어나시는 시간에 맞춰 저도 일어날 거예요. 엄마는 평소에 무얼 드시고, 어디에 가시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시는지… 엄마는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궁금해요.”
“올해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엄마는 86세이고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저는 엄마와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매년 한국에 가고 싶어요.”
현수 씨의 말에서 다시 간절함이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수 씨가 한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일상을 함께 하며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을 상상하며 ‘한국에 오기 전에 전화로 할 수 있는 대화, 처음 만났을 때 나눌 수 있는 대화, 식사할 때의 대화,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 때 나눌 수 있는 대화,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때 나눌 수 있는 대화…’ 등을 중심으로 수업으로 준비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현수 씨가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는 상황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를 공부했는데, 공부하는 동안 현수 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수 씨는 행복한 듯했습니다. 그런 현수 씨를 보니 정채봉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엄마가/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엄마와 눈맞춤을 하고/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 시에서 휴가를 나온 엄마를 만나는 화자의 마음이 현수 씨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현수 씨는 어머니를 꼭 ‘엄마’라고 부릅니다.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 현수 씨의 나이를 고려해서 제가 ‘어머니’라고 고쳤더니 현수 씨는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 또한 알 것 같습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사는 현수 씨와의 한국어 수업은 ZOOM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수 씨의 한국어 실력은 거의 초보 수준인데, 부족한 제 영어가 현수 씨의 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