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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Jul 11. 2022

뉴욕 1. 낯선 도시, 능동적 몰입

코로나 시국에 나는 왜 뉴욕으로 갔을까?

  2021년 10월, 내가 뉴욕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머! 뉴욕에 간다고? 너 엄청 용감하다!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쫌만 참았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가도 되지 않을까?.”

 “잘 결정했어. 갔다 와. 별일이야 있겠어? 근데 나라면 못 갈 것 같아.”

 “와! 너무 좋겠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상상만 해도 신난다. 여행은 네가 가는데 왜 내가 더 신이 나지?”


 두려움과 기대 섞인 친구들의 반응,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마음과 ‘괜찮을 거야. 일단 가 보자.’라는 두 생각이 계속 시소를 타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뉴욕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딸도 그곳에서 출퇴근하며 생활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그러다가도 맨해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묻지 마 살인이나 아시아인 혐오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다시 마음을 접게 됐다.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나 하고 자포자기할 무렵 문요한 님의 저서 ‘여행하는 인간’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을 만났다.


 어느 날 낮,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 나무들 사이의 이 거미와 달빛, 그리고 이 순간과 바로 나 자신도, 현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가 거듭해서 뒤집혀 세워지고- 티끌 중의 티끌인 너도 모래시계와 더불어 그렇게 될 것이다. – 니체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유고’ 중 한 대목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뉴욕 여행을 결정했다.

 ‘그래, 가자. 가야 한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분명한 결론이었다.

 늘 하던 일 말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명예퇴직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일 년 반 동안 발이 묶여 있다. 퇴직 동기들과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다. 직장 다니는 동안 도움을 주셨던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계획했던 해외여행도 접어야만 했다. 그나마 숨통 틔워 준 것은 제주였다. 코로나 이후 친구들과 네 번 다녀온 제주도가 너무나 고마운 때였다.

 퇴직하고 시간이 많아지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다. 전화영어회화, 그림, 요리, 독서, 수놓기, 평일에 하는 여행 등등. 심지어 뜨개질로 100개도 넘는 설거지 수세미를 만들었다. 소소한 시도들이 잔 재미를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신나지는 않았다. 가끔은 그날이 그날 같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니체의 글을 보고 겁이 덜컥 났는지도 모른다.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지금의 내 삶이 똑 같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그런 삶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절대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위해 새롭고 낯선 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랬다, 변화가 필요했다.


 결정을 하고 나니 신이 났다. 여행은 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했고, 시작이 반이니까 난 이미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행 가기 전에 늘 그랬듯이 뉴욕에 관한 책을 서너 권 마련했다. 그리고 구글 지도를 열어 뉴욕 지도를 공부하며 여행노트에 나만의 여행지도를 그렸다. 이미 세 차례 다녀온 뉴욕이지만 주인의식 없이 한 지난 여행에서는 크게 기억할 만한 것이 없었다. 여행 전에 그곳의 역사나 지리를 공부하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을 몇 배로 키워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책으로, 지도로 뉴욕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공부하며 관심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고 필요한 내용을 메모했다. 딸이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 낮에는 혼자 다녀야 해서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은 낯선 마을에서 아침에 홀로 깨어날 때다.’

 ‘여행은 도전이며 건강한 스트레스다.’

 여행에 대한 이런 명언들이 아닐지라도 당시 나에게는 변화가 절실했고 여행이 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편안함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능동적인 몰입을 하기 위해서 나는 뉴욕으로 향했다.


 그리고 뉴욕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뉴욕은 반복된 일상으로 소진된 나의 에너지를 채워주었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해 주었다.


뉴욕 2부 내가 사랑한 브루클린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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