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나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벼가 자라는 작은 체험 공간이 있다. 그곳에 올챙이와 우렁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우렁이 두 마리가 다정하게 붙어있고, 올챙이의 뒷다리가 아주 조그맣게 나와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늘 헷갈리던 질문도 그제야 정리되었다. 뒷다리가 먼저 나오고, 다음에 앞다리 나오고. 꼬리가 사라지면 비로소 개구리가 된다.
그 순간 오래된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전에 분명 그렇게 살았으면서, 마치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한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과거의 나를 타인처럼 밀어내는 순간, 나는 어느새 개구리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땐 어려서 그랬지. 어쩔 수 없었잖아.”
의식이 어두워지면 남이 보이고, 밝아지면 내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지 않았나?’ 이 질문 하나가 해석을 바꾼다. 관계의 결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한다. 지우개로 문지르듯 깨끗이 없애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워진다고 정말 사라질까? 그 기억들은 무의식 깊숙이 숨어 있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 불쑥 튀어나온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간절히 되고 싶어 했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그때의 나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부족해 보였지만 순수했고, 어리석어 보였지만 뜨거웠다. 그 순간의 나는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다 괜찮다”라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습관을 갖고 살아간다. 알지 못하는 유전자의 프로그램, 그리고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삶의 패턴들. 그 패턴들이 부딪치며 우리는 아파하고 흔들린다. 무지개는 일곱 빛이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결이 다르면 틀렸다고 말한다. 그 다름 앞에서 자주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또 배운다. 좋아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 하고, 따뜻한 태도에 자연스레 반응한다. 우리 뇌에는‘미러 뉴런’, 즉 공감의 장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따라 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이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나 역시 엄마의 말투와 행동을 어느새 닮아 있었다.
어릴 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았다. 엄마는 길을 지나던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었고, 아이를 데리고 온 이에게 씻을 곳을 내어주기도 했다. 그땐 그게 싫었다. 왜 우리 집이 늘 열려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날개 없는 천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밈’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유전자만으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문화라는 밈과 함께 진화해 온 존재라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는 말 역시 아주 오래 살아남은 밈이다.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문화적으로 붙잡아 두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 속담을 떠올리며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본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지구에서의 삶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서로의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며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축제처럼 살아가고 싶다.
구글 재미나이에서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