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엄마 생신을 맞아 형제들이 친정에 모였습니다. 다섯이나 되다 보니 토요일 이른 점심시간이 다들 괜찮다하여 낮 12시까지 도착하자 했지요.
날씨도 덥고 식구가 많아 친정집도 복잡하여 식당을 잡으려 했는데, 사람이 스무명 정도다 보니 마음에 드는 곳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침 괜찮은 식당이 있었는데, 공사중라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지요. 하는 수 없이 우리5형제(딸4, 아들1)는 각자 요리를 하나씩 해 오기로 했습니다.
부모님 생신상차림은 엄마 손가락 하나 까딱하시지 않게, 국이며 밥까지 해오자며 얘기했었지요.
요리 솜씨가 좋은 1,2,3번 언니(저희 집은 편의상 번호로 부릅니다 ^^ 저는 4번, 남동생 5번)들은 각자의 필살기를 해오기로 하고, 딱히 내세울게 없는 저는 미역국을, 올케는 샐러드를 해오기로 했지요.
큰 언니는 비쥬얼도 고급진 불고기를,
둘째 언니는 정성 가득한 몇 가지 나물과 전,
몇 년전부터 요리 솜씨를 인정받기 시작한 셋째 언니는 인기 만점 잡채와 오이무침,
그리고 저는 다시국을 우려낸 조개 미역국,
올케는 야채와 과일을 곁들인 샐러드, 남동생은 자기 필살기인 마늘빵도 만들어 왔습니다.
오는 길에 횟거리와 언니네 친구 떡집에서 주문한 떡케익도 찾아와 상을 차리니 어느 고급진 식당 못지 않았습니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으로 차린 생신상
남동생이 구워온 빵, 팔아도 될 비쥬얼과 맛입니다 ^^
서로가 해 온 음식을 먹으며, 나날이 맛있어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물론 맛도 훌륭했지만, 계속 만들게 하기 위한 립서비스도 포함^^) 은근히 누구 음식이 가장 인기가 많은지 평가도 받는 자리였지요.
언니들이야 다들 검증된 주부들이라 음식들이 정말 보기에도 맛도 최고였습니다. 얼마나 다들 정성스럽게 준비했는지, 재료들이 잘라진 모양만 봐도 알 수 있었지요.
저의 미역국은 어땠냐고요? 물론 과하게 다시 재료를 넣어 푹 우려낸 후, 조개를 넣어 팔팔 끓였으니 맛이 안날수가 없지요. 사실입니다.. 믿어주세요 ^^
식사를 마치고 케익을 불고 나면, 선물 증정 시간이 있는데요, 항상 손자 손녀들의 편지 낭독 순서를 가집니다. 유치원 때가 엊그제 같은 큰 조카는 벌써 20대 중반을 넘었고, 막내 조카가 10살이니 사촌들간에도 나이차가 좀 나는 편입니다. 셋째 언니만 아이가 한 명이라 총 9명의 손주들의 편지 낭독을 듣곤 했었는데요, 대학생인 조카들은 타 지역에 살다 보니 다 참석하진 못했습니다.
편지 내용이 어쩜 다들 한결 같은지, 날씨 얘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할머니의 음식 칭찬과 장수를 당부하는 레퍼토리는 매년 반복되어 이모들은 서로 편지를 베껴썼냐, 이제 안들어도 외울것 같다며 놀리곤 합니다. 예전엔 어린 조카들에게 춤과 노래도 시키곤 했는데 이제 시켜도 할 나이들을 지나 그게 좀 아쉽긴 합니다. 미쳐 편지를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은 핸드폰 메모장에 급하게 쳐서는 편지지 대신 폰을 들고 읽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조카들 순서가 지나면 우리 형제들이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드리는데요, 편지 낭독은 올해 생략했습니다. 작년에 둘째 언니가 읽다가 온 식구들이 눈물 바다가 되는 바람에 그냥 나중에 엄마 혼자 읽는 것에 다들 동의했지요 ^^
음식을 나눠먹고 한바탕 웃고 하는 가운데 엄마 아빠의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눈에 꼭 넣어두려고요. 아마 우리 형제들 다 그런 마음일거에요. 팔순을 넘은 아버지와 내년에 팔순인 엄마, 두 분이 저렇게 건강하게 나란히 앉아 웃을 날이 얼마나 될까하고요. 내년 생신때도 저렇게 두 분을 함께 보게 해 달라고 속으로 더 간절하게 빌게 되는 요즘입니다.
연세가 있다보니 몸 여기저기 안좋은 곳이 있긴하지만 특별히 편찮으신데가 없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계시는 집이 참 많은 요즘 세상에 두 분이 집에서 이렇게 잘 지내시니 주말이면 찾아갈 데가 있고, 반겨주시는 부모님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일인지요.
돌아오는 명절에는 친정집 말고, 2번 언니네 텃밭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일 년에 두어번 가는데요 시골집처럼 잘 꾸며져 있어 우리 친정식구들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벌써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명절에도 두 분의 건강한 모습을, 제 두 눈에 고이 고이 담아 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