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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Jul 12. 2024

어머니의 김밥

김밥은 언제나 옳다


시어머님이 새벽같이 오시면서 김밥 10줄을 싸 오셨다. 


"어머, 어머니 웬 김밥이에요?"

"아, 오랜만에 함 싸봤다. 좀 묵고 가라"


벌써 아침을 먹기도 했고, 막 나가려던 참이라 제일 맛있는 큼직한 꼭지 부분을 입을 크게 벌려 집어넣었다. 


"으음~ 맛있어요~  어머니!"





적당한 밥 양에 간도 맞고 단무지, 어묵, 계란, 당근, 오이가 깻잎에 한 바퀴 둘러싸여 있었다. 스팸이나 참치 같은 사치품 없이, 어릴 적 소풍 갈 때 엄마가 싸 주시던 딱 그런 김밥이다. 소박하고 담백한 맛! 단무지, 당근, 어묵의 맛 하나하나가 다 느껴지는 듯했다. 


어머님은 내 두 아이를 키워주신 분이다. 연년생 남매들이 중학생인 지금까지도 아침 7시경이면 어김없이 오신다.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조금 일찍 출근해 책도 읽고 내 시간도 가진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고 손이 빨라 뭐든 뚝딱 뚝딱 잘 만드신다. 나에게는 너무도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인데, 어머니는 이 새벽에 오시면서도 언제 재료 준비에 김밥까지 말아 오셨는지, 역시 대단하시다.  


은박지에 두 줄씩 5묶음 중, 2묶음 4줄을 사무실에 들고 갔다. 어차피 집에 둬도 아이들 한두 줄만 먹을 것이고 여름이니 저녁쯤이면 맛이 상할 것도 같고, 냉장고에 넣으면 또 그 맛이 사라지니 최대한 빨리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아침부터 비바람이 쳐서 점심은 나가서 먹는 대신 이걸로 해결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늘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 4명에 한 줄씩,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컵라면을 하나씩 먹으면, 비 오는 날 딱 좋은 점심이 될 것 같았다. 



점심시간 5분 전,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은박지에 쌓인 김밥을 찬찬히 풀어 맛보았다. 다들 김밥은 자주 먹지만, 집에서 만든 건 오랜만이라 들떠 보였다. 어릴 적 소풍 가서 친구네 집 김밥은 어떤 맛일까 하고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밖에서 사 먹는 스페셜 김밥은 아니지만 추억 돋게 하는 속 재료와 비주얼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어머님이 가끔 김밥을 싸오시는데, 오늘 10줄이나 들고 오셨더라고요. 마침 비도 오고 해서 점심때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 들고 왔어요. 우리 어머니 김밥 맛있어요. 가장 기본 재료만 들어갔는데도 간도 잘 맞고요. 한번 드셔보세요."


"와~ 집에서 만든 김밥 진짜 오랜만이에요. 별것 안 들어갔는데, 정말 맛있어요~ 당근이며 단무지가 씹히는 식감도 좋고요. 어머니께 잘 먹겠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각각 김밥 한 줄과 라면으로 근사한 점심 만찬을 즐겼다. 예전 분식집에 가면 항상 이 세트로 시키곤 했는데, 맛과 양이 꽤 괜찮은, 가성비 좋은 국민 조합 세트인 이유가 있다.


저녁에 집에 도착하니 막 8시를 지나고 있었다. 정말 배가 너무 고파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식탁 위에 어머님이 차려 놓으신, 김밥을 보며, '와! 김밥이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배고픈 저녁 시간에 보니 더욱 반가웠다. 


손만 간단히 씻고, 김치찌개를 데웠다. 김밥과 김치찌개는 또 다른 환상궁합임을 알기에 찌게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였다. 요즘 아랫배가 점점 나와 저녁은 소식하거나 굶자고 다짐했었다. 요 며칠 잘 견뎌왔는데 왠지 오늘 저녁, 무너질 것만 같았다. 역시나 김치찌개는 김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선사해 주었다. 


한 줄만 먹자 했는데 결국엔 한 줄 반을 먹었다. 사실 두 줄도 먹을뻔했지만 나름 자제한다고 안간힘을 썼다. 아침보다 맛은 덜했지만 그래도 김밥은 언제나 옳다. 지금이야 너무도 흔한 국민 간편식이지만  어릴 때만 해도 소풍이나 운동회는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일 년에 2-3번도 밖에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소풍날 아침, 이른 새벽부터 엄마가 준비하신 김밥이 한 줄 두 줄 쌓일 때마다 그날 소풍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커졌다. 도시락에 담고 남은 양 꼭지는 언니들과 경쟁하듯 먹어 그 맛이 더했다.


어릴 때 그 음식에 담긴 의미가 '기쁨, 설렘'이라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어머님이 넉넉하게 준비하신 덕에 종일 김밥에 빠져 옛 추억까지 소환되는 넉넉하고 하루였다. 특히 누구랑 경쟁할 필요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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