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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Aug 19. 2024

노인들의 일상속 불편함, 우린 얼마나 알고 있나?


며칠 전 쉬는 날, 남편과 모처럼 친정엘 갔다. 나야 가끔 언니와  한 달에 두어 번 가긴 하지만 남편은 갈 일이 잘 없다. 둘 다 시간이 되어 점심때 들러 밥이나 같이 먹고 오자며 전날부터 약속했었다.


"엄마, 문서방이랑 점심때 갈 건데, 뭐 드시고 싶어요?"


"아이고, 오늘 시간이 되는 가베. 그냥 온나. 와서 집 밥 묵자"


"아니, 엄마 더워서 나가서 시원한 거 먹고 와요"


"그라까? 그라면 냉면이나 먹고 오던지"


"네, 조금 있다 출발하면 12시 안에 도착해요. 전화드릴 테니 아버지하고 준비하고 계시다가, 전화하면 나오세요"







그렇게 부모님을 모시고, 평소 유명한 동네 냉면집을 찾았다. 시간이 딱 점심때라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테이블 순환이 빨라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하지만 음식이 나올 때까지 테이블에 앉아서도 15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내내 주방 쪽을 보며 혹시 우리 주문이 누락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또 아버지 표정도 살짝 훔쳐보았다. 


지금이야 연세 드셔서 그러진 않지만 성질이 꽤 급하셔서 예전 같으면, 


'음식이 와이리 안 나오노!'하시며 벌써 두어 번 말씀하셨을 시간이었다. 누가 봐도 그냥 힘없는 할배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주변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만 두리번거리며 눈만 끔벅하신다.


식당에 오신 손님들도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테이블 예약도 키오스크에서, 메뉴도 테이블에 있는 기기에서 눌러 주문을 했다. 나에게도 쉽진 않은데 저렇게 노부부만 오신 분들은 어떻게 다 주문을 했을지 궁금하였다. 


식당에 오자마자 계산대로 가서 주문하려던 노부부는 키오스크에서 테이블 예약부터 하라는 말에 당황해하셨다. 물론 직원이 도와주긴 했다.  그래도 그분들은 우리 부모님보다 젊은 편이다. 엄마, 아버지는 이제 팔순이 넘은 데다 이런 기계를 써 본 적이 없어 아마 예약부터 메뉴까지 직원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데, 2인 테이블의 음식은 서빙 로봇이 정확하게 가져다주는 걸 보고 부모님은 참 신기해하셨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 피해 가며 그 테이블에 가져다주는지 '참, 신기하네'를 연발하시며 눈을 떼지 못하셨다. 










우리도 급격하게 변하는 이 사회 시스템에 따라가기 벅차다. 나 역시도 몇 년 전 키오스크 앞에서 좌절하여 주문하지 못하고 돌아선 적이 있다.  은행, 식당, 마트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출금을 못하고 주문이 힘들고, 앱이 안 깔려 마트에서 할인을 못 받는 분들이 보인다. 나도 이런데 저분들에게 지금 세상은 어떻게 비칠까? 스마트폰도 이제 겨우 배워 사용하는데 이제 이걸로 은행일도 시장도, 결재도 다 하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제 시키는 대로 따르시오. 못하겠으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던지.




혹시 세상은 노인들에게 이렇게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진 않을까?  버스가 어디에 언제쯤 오는지 물어볼라치면 '앱 보면 되잖아요!' 하고 표정으론 말하지만, 마지못해 알려주는 손자뻘의 젊은이이들을 대하는 마음은 어떨까?


'이제 이런 것도 못하니 나도 늙긴 늙었나 보다. 도저히 세상 변하는 거 따라가질 못하겠네.. 할 수 없지 뭐. 이렇게 살다 가는 수밖에..'


뭐 이런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늙었으니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



올해 초 엄마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몇 해 전부터 눈이 뿌옇다 하셔서 우리들은 전부 노안이니 안경이나 맞춰 드렸는데,  나아지지 않아 올 초에야 안과를 간 것이다. 한쪽은 이미 진행이 많아 심각한 상태였다. 다행히 지금은 수술도 잘 되어 그리 불편함은 없지만, 처음 엄마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이 들어 그런 거겠지. 돋보기라도 맞춰야겠다



 생각밖에 못 했었다.


'나이가 들어 그렇다'라며 퉁치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불편하고 궁금하고 아파도 자식에도 말하지 못하고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일상의 불편함 들은 또 얼마나 될까?









출퇴근길 공짜로 전철을 타시는 노인들을 보며, '출근시간은 좀 피해서 타시지. 뭐가 바쁜 일이 있다고'하며 속으로 불편함을 드러냈었다. 그 나이 대 부모님을 둔 나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오죽하랴.


나도 나이 들어보니 이제야 보인다. 관심이 간다. 


노인 인구는 점점 많아지고 나도 가까워지고 있다. 급변하는 노령인구에 우리 사회도 처음이라 서툴고 배려가 부족한 건 당연하다. 우리가 갈 일이고 부모님이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 시선'에 좀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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