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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 동네 쌀집 바보

by 나무노트

우리는 그 남자아이를 ‘쌀집 바보’라고 불렀다,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그 아이는 우리 동네 쌀가게 막내아들이었다. 사시사철 어른 슬리퍼에, 여름에는 다 늘어진 런닝과 반바지 차림이었고, 겨울이라도 소매가 길어진 것 외엔 두꺼운 옷을 입는 법이 없었다.

쌀집 바보는 등하교 시간에 맞춰 가게 입구에 서서 또래 아이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했다. 자신에게 조금 반응이라도 보이면 언제나처럼 발가락이 반은 튀어나온 어른 슬리퍼를 끌고 무리에게도 뛰어갔다. 아이들은 비명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제각각 흩어졌고 풀이 죽은 동네 바보는 아쉬운 듯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쌀집 바보가 무서웠다. 가끔 엄마는 바가지를 건네며 나에게 보리쌀 한 대만 사 오라고 하셨는데, 쌀가게 입구에서 바보가 있나 없나부터 살피며 언제든 도망갈 태세를 갖췄다. 항상 야릇한 미소를 띠며 눈만 마주치면 금방이라도 뛰어올 것 같아 쌀집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온통 신경이 곤두섰다.

쌀집 건너편 아래는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쌀집 바보는 자주 그 담벼락에 붙어서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웃곤 했다. 가끔 누군가에게 소리도 지르고 손도 흔들어대면 운동장 아이들은, “‘야, 쌀집 바보다!” 하고 고함쳤고, 바보는 또 그게 반가워 더 큰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로.


어린 내가 보기에도 쌀집 바보의 일상은 너무도 지루해 보였다. 인생의 재미라곤 그저 지나가는 또래를 구경하거나, 소리 나는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쌀가게 아저씨는 바쁜 가게 일로 그런 아들에게 무심한 듯 보였고 가끔 찻길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아들에게 소리치며 나무라곤 했다. 그러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입구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며, 종일 저쪽 담벼락에 붙어 아래 운동장을 쳐다보는 아들 뒷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셨다. 내가 기억하는 쌀집 바보의 마지막 모습은 덩치가 아저씨만큼이나 커지면서 슬리퍼가 발에 꼭 맞았고, 그런 아들을 아저씨는 가끔 버거워했다.

내가 열 살 즈음 일이니 벌써 삼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가끔 그 쌀집 바보 오빠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릴 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웃음이 싫고 무서웠다. 다들 동네 바보라고 하니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판단했다. 하지만 등교하는 아이들을 쳐다보고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그 오빠의 눈빛은 늘 구름 위를 걷는 듯 황홀한 표정이었다.

부모의 애달픔과 사람들의 동정 어린 표정을 뒤로한 채 완벽하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이면, 어떤 기분이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세상과 단절되어 옳고 그름이 없고, 득과 실이 없는 마음, 그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이면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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