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로수라고 불리는 나무입니다. 주로 도심속 도로변에 심겨집니다. 우리는 나름 수간이 곧고 수형이 대칭을 이루는 제법 잘 생긴 나무들입니다.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며 도시에 푸르름을 더해 주고 공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 가로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수종끼리 심어집니다. 아주 어리지도 너무 나이 들지도 않은 적당한 규격의 나무들이, 전국 농장에서 한 인물 한다는 수형이 고른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멋들어진 경관을 만들어내지요.
농장에서는 그래도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같은 종류끼리 모여 있기도 했고 언제부턴지 몰라도 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습니다. 주인은 계절에 맞게 가지를 잘라주고 비료를 뿌려 주고 병해충 약도 쳐주며 우리를 정성스레 보살폈습니다.
그러다 적당한 크기의 건강한 나무가 되고 얼마 안 있어,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나무들은 주인이 빨간 노끈으로 표시하듯 가지에 묶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포클레인과 트럭이 왔고 영문도 모른 채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깊숙이 뿌리내렸던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나의 뿌리가 일부 잘려 나갔고 내 밑둥치의 몇 배쯤 되게 나의 뿌리분을 마대로 칭칭 감아 나를 큰 트럭에 눕히고는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고향땅을 떠나 도착한 곳은 높은 건물과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시의 어디쯤이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하나씩 뉘어졌고, 아까 본 그 포클레인이 보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큰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설마 저 좁고 차가운 구덩이 속에 내가 평생 갇힐 줄은!
그 무서운 장비는 우리를 끈에 매달아 하나씩 그 구덩이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고는 흙을 빈 공간에 채워 가까스로 우리를 세워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가 많이 잘려 혼자 서 있을 수 없기에 지주목이라 불리는 긴 나무 막대를 세 개를 들고 와서는 내 몸통에 대고 땅에 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주목과 내 몸은 철선으로 단단하게 고정시켜 내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꽉 쪼여 아프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같은 간격으로 저만치씩 떨어뜨려 하나씩 구덩이에 심기 시작했고 긴 나무 막대로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게 꽉 쪼였지요. 숨통이 조여왔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친구와는 눈으로만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도시는 어릴 때 자라던 농장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도로변 차들은 내 가지 끝을 스치며 지나갔고 가끔 큰 트럭으로 가지 일부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여름에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자 가게 주인은 간판을 가린다며 컴컴한 밤, 아무도 몰래 내 가지를 톱으로 잘라버렸습니다. 그래도 가지만 자르는 주인은 양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가게 앞 우리가 못마땅하여 밤마다 몰래 소금물을 부어 서서히 말라죽게 했습니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금방 고마움을 잊었습니다. 가을 단풍도 잠시, 떨어지는 낙엽이 지저분하다며 또다시 저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치를 옮겨 달라느니, 차라지 베어버리라고 소리쳤지요. 그러다 태풍이라도 와서 쓰러지거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소리 없이 미소 지었습니다.
함께 이 도시로 온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이가 들자 병을 얻어 죽어갔습니다. 고사된 친구들은 쓰러지면 다른 피해를 주기에 가차 없이 톱으로 토막토막 잘려 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오래전 제거됐어야 할 지주목이 아직도 몸통을 죄이고 수피까지 파고들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멋진 자태로 시골 농장에서 뽑혀와 이곳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조그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던 친구들과는 같은 간격으로 떨어져 평생을 닿을 수 없는 그리운 존재가 되었고, 옆에서 쓰러져 가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 했습니다.
옆에 있던 오랜 친구가 며칠 전 잘려 나가고, 오늘 그 자리에 젊고, 잘생긴 녀석이 심겼습니다. 옛날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어리고 생기 있던 모습 그대로였지요. 그러다 영문도 모른 채 구덩이에 심어져 지주목으로 옭아매어진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굳이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야 희망이란 걸 갖고 살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