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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Aug 04. 2023

각자도생, 우리 가족!

우리 가족은 각 자의 별에서 빛나고 있다.

나는 15년 차 주부이자 중학교 1, 2학년 남매를 둔 워킹맘이다. 결혼은 늦었지만, 다행히 아이가 바로 찾아와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을 낳다 보니 어릴 때는 육아가 정말 힘들었다. 운 좋게 어릴 때부터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돌봐 주셨고, 친정 언니들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분에 지구상에 둘도 없을 시어머니를 만난 거라며 부러워했다. 사실 내가 육아에 적합한 엄마가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 어린 조카들을 돌볼 때부터 그런 의심이 가더니, 역시나 내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온화하고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 것 같다는 예감을 확신했다. 첫째를 출산한 뒤, 난 육아의 고단함에 꽤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언니들에게 아이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왜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분노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니 키울 때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금세 또 잊어버리니 언니들도 그러했으리라 짐작은 갔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으나 온종일 둘만 있어야 하는 데다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나를 본 순간, 탈출을 결심했다. 그래, 차라리 일을 하자. 이렇게 몇 달 더 살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주어진 3개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바로 복직했으나, 7개월 만에 둘째를 가져 첫 출산 후, 15개월 만에 다시 남자아이를 낳았다. 노산에 연년생 출산으로 몸이 매우 힘들었고 1년 육아 휴직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세심하게 일일이 챙겨 주는 것이 너무 힘든 엄마이고, 아이들보다 내 인생의 여유와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시하는 사람임을 말이다.      



 내가 전생에 덕을 쌓아 만난 자상하고 세심한 어머니 덕분에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초등학교 입학 무렵 한글도 어느 정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에 나보다 더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는 놀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엄마들에게 전해 들은 사교육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도 시켜보자며 종종 말씀하셨고, 가끔 광고지 등을 식탁 위에 올려놓곤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어린 시절엔 그저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일축해 버렸다. 사실 어머니를 믿는 구석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서 부담감에 힘이 드시진 않았나 하는 죄송한 마음도 생긴다. 그 시절, 어머니 덕택에 한글을 깨친 아이들을 볼 때면 학교 갈 준비가 완벽해 보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바쁜 엄마에 의지하지 않고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잘 자라 주었고, 학년 초 필요한 준비물 정도만 챙겨 주면 학기 중에는 학교 과제도 스스로 알아서들 잘해 나갔다. 그러다 일 년에 두어 번 서게 되는 교통봉사에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책임감도 강하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잘 지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얘기해 주어 나를 안심시켰다.     


 집에서는 티격태격하는데 나가서는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이런 나도 아이들에게 독서만큼은 습관으로 들이고자 어릴 때부터 도서관도 정기적으로 데리고 다니고 책 읽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고 주말에 친구들끼리의 약속이 잦아지면서 맛있는 걸 사주고 용돈을 더 준다고 해도 이제는 엄마와는 도서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질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 나의 성향과는 반대로 남편은, 엄마보다 더 자상한 아빠이자 자기만의 여가를 아주 잘 보내고 있는 취미 부자다. 남편은 주말에도 지루할 틈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하루에도 믹스커피만 몇 잔씩 먹던 남편이 몇 해 전부터 커피에 관심을 가지며, 책을 몇 권 빌려와서 후벼 파더니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덕분에 나는 아침마다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드립 커피를 매일 텀블러에 들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안 음식에 베트남 음식까지 섭렵하여, 여느 식당 못지않게 훌륭한 음식을 내놓았다. 특히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친정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전기 분야도 공부해서 집 안의 등을 LED로 직접 교체해 공사비를 아꼈고, 이제는 간단한 도배도 할 줄 안다. 앞으로 타일공사와 목수 일도 배우고 싶다길래, 종합건설업 면허를 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가 농담을 던졌다. 참 별나긴 하지만 모든 취미가 가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 사실 너무 감사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도 좋아하는 것이 하나씩 있다. 큰딸은 여유 시간에 쿠키나 초콜릿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 걸 좋아한다.  사실 이것 때문에 나와 많이 다퉜지만, 아이가 뭔가에 집중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나쁘지만 않다면 잘 관찰하고 지지해 주라는 전문가의 말을 듣기로 했다. 엄마인 내가 화가 난 이유를 잘 들여다보니, 귀한 시간에 공부를 좀 하면 좋겠는데 제빵을 온종일 하는 데다 부엌까지 점유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고 공부 걱정에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물론 뒷정리는 딸아이가 스스로 한다고 했지만, 그것마저 내가 신경 쓰느라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날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제나 편지를 쓰고 꽃과 초콜릿 과자를 만드는 딸을 보면서 난 왜 그리 잔소리만 해댔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만드는 양이 많아지고 재료비가 꽤 들기 시작하자 딸은 아빠에게 재료주문을 몰래 부탁했다. 이번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는 각종 재료가 든 묵직한 택배 상자가 몇 개나 집으로 배달되었다.      


 순간 또 화가 올라왔지만, 씩 웃으며 나의 눈치를 보는 남편과 딸아이를 보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재료를 사준 것도 아니고 도와줄 것도 아닌데 내가 화를 낼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에 순간 입을 다물었다. 역시나 딸아이는 주말을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만드는 것에 투자했고 나는 순간순간 올라오는 화를 참느라 힘이 들었다. ‘그래 뭐라도 해라. 종일 핸드폰 보는 것보다 낫지. 만들고 나면 우리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자고 속으로 몇 번을 다짐했다.     


  

 둘째 아들 녀석은 운동을 좋아한다. 어릴 땐 꿈이 축구 선수여서 몇 년간 축구를 배우더니 선수 말고 감독이나 에이전시가 되겠다고 한다. 프로 선수의 고단함을 안 것이다. 지금도 주말이면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종일 나가 있다가 저녁에나 들어오곤 한다. 또 작년부터는 드럼을 배우고 싶다기에 근처 학원에서 배우고 있는데, 어린 학생이 우리 아이뿐이라 선생님께서 기특하다며 매일 맛있는 간식을 사주시는 덕에 신나게 다니고 있다. 특히 이번에 입학한 중학교에 마침 밴드부가 있어 지원했으나아직 초보 실력이라 들어가진 못했다많이 실망할까 걱정이었는데 앞으로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기특하다.   

  

 거기다 유치원 때부터 해 온 태권도까지 다니느라 저녁이면 몸이 녹초가 된다. 그러니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영어 학원 숙제가 밀리는 날이면 과제가 너무 많다고 한바탕 짜증을 낸다. 사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영어 학원비가 부담도 되고 해서, 그냥 혼자 EBS 교재 보며 공부하면 안 되겠냐 하니 그건 또 못할 것 같단다. 혼자 하면 안 할 걸 알기에 아직은 자신이 없다고 말이다.  영어 공부에 지쳐가는 아이에게 나는, 나중에 스포츠 에이전시나 감독이 된 후, 유명한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싶을 때 영어가 자유롭게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나름 동기부여를 하니 조금 수긍하는 눈치다. 얼마나 갈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나대로 작년부터 시작한 새벽 기상과 글쓰기, 경제 공부와 시대 흐름을 따라가느라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른다. 내 인생 공부, 어른 공부하기도 시간이 모자란 탓에 아이들 공부를 챙겨 줄 여력이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공부할 게 많으니 같이 하자 권하기도 하고, 나중에 컸을 때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학창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말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도전해 보라고 하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적극적으로 교육에 대한 정보와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나중에 아이들이 후회하거나 내 탓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밝고 자기 꿈을 꾸면서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도록 내가또 우리 아이들이 아주 단단해졌으면 좋겠다항상 아이들의 뒤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꿈을 지지해 주고 힘들 땐 기댈 수 있는 그런 그림자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자식과 부모로 만나긴 했지만어차피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면 아이들이 잘 살아갈 방법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자립할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부모 역할인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도 중학생 부모는 처음이기에 이 방법이 맞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발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항상 공부하는 엄마가 하나씩 이뤄내는 성과를 보며 아이들 스스로가 느끼고 깨달았으면 좋겠다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중한 삶을 위해 각자도생 할 수 있는 프로 자기 계발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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