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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Aug 25. 2023

나의 사랑하는 시간


여러분이 가장 애정 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새벽 기상을 하는 분들은, 세상이 움트기 전 모든 기운들이 나에게 쏠리는 듯한 그 시간이 가장 충만하고 소중할 겁니다.


가정주부라면, 남편과 아이들이 다 떠나고 집안일을 끝낸 정오쯤, 향이 끝내주는 커피 한 잔이 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올해는 안식년 같은 해라, 일생에 다시 못 올 여유와 시간적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주에 끝나는 쉼의 시간이 안타까워 가는 시간의 뒷덜미라도 잡고 싶은, 끝도 없는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

저 역시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이라, 깨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농축된 새벽 시간을 좋아하는데요,  아마 이 맛에 중독되어 몸이 힘들어도 눈이 떠지는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하루의 1-2시간은 낮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해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저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행복한 순간'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루의 행복한 '첫 번째 순간'입니다.


알람 소리에 잠이 깨고, 아직은 푸르스름한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억지로 눈을 뜨지 않고, 정신부터 차분히 깨웁니다. 


'새벽이구나, 잘 잤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발가락을 꼬물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른쪽 왼쪽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서서히 내 몸이 스스로 깨어납니다. 이건 얼마 전 저의 멘토에게 전해 들은 방법인데요,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먼저 일어난 내 정신이, 나의 몸에 최대한의 예의와 조심성을 갖춰 깨운다는 경건함마저 생깁니다.


몸은 이렇게 깨워야 하는구나.


자는 동안 머릿속의 찌꺼지를 말끔히 없애주고, 에너지를 보충해 준 나의 몸에 최소한의 고마움은 느끼고 몸을 일으켜야 하는구나. 자는 동안 받을 것 다 받았다고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찬물부터 벌컥벌컥 마실 게 아니라, 먼저 깬 정신이 몸을 살살 달래주면서, 주어진 하루에 감사함을 느끼게 한 후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구나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두 번째 순간입니다.


요즘처럼 휴가로 집에 머무는 동안은, 나 혼자가 되는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각자의 하루 여정을 떠나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집안일을 끝낸 후, 거실 소파에 내 몸을 뉘는 그때입니다. 


참, 눕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요즘 제가 즐겨 듣는 가야금 연주로 듣는 캐논이나 대금 연주를 블루투스로 음질 좋은 스피커에 연결하는 일입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 소개받은 곡인데요,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캐논' 꼭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누워서 가야금 12줄의 명주실이 튕기는 선율이 온 집안을 채우면, 국악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당장 가야금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 번째 행복한 순간입니다.


이렇게 청소와 휴식을 마치면 점심시간인데요,


저는 나이 들면서 라면을 더 자주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라면은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음식인 것 같아요 ^^;;  팔팔 끓는 라면을 식탁 위 미리 준비해 둔 받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리고, 잘 익은 김치의 반찬 뚜껑을 열면 벌써부터 심장은 나대고 입에 침이 고입니다. 얼른 꼬들꼬들한 라면 한 젓가락을 김치와 함께 후루룩 입에 넣는 그 순간, 내가 이거 먹으려고 아침에 그렇게 분주했구나 하며 보상받는 기분이 듭니다. ^^

참, 아이들이 오기 전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건 잊으시면 안 됩니다. ^^







그리고, 저의 네 번째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인데요, 이게 사실 아쉬움 반, 반가움 반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나만의 시간은 끝났지만 몇 시간 만에 보는 아이들의 얼굴은 사랑스럽습니다. 

바깥에서 별일이 없었으면, 아이들은 집에 들어서면서 춤을 추거나 가벼운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춘기 남매라 까칠할 때가 더 많지만 이럴 때 보면 아직 아이구나 싶어 얼른 눈에 간직하고 마음에 담습니다.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순간입니다.


저녁 먹은 그릇들을 헹궈 낸 후, 행주로 싱크대의 물기를 닦아 빨아 널고, 고무장갑을 손에서 빼는 순간입니다. (글만 보고 제가 대단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 착각하시는 분이 없으시길..^^;)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의 의무가 끝나고, 이제 잠들기까지의 시간은 왠지 보너스를 받은 기분입니다. 그래서 저녁의 마무리를 되도록 빨리하고 싶은데요, 소파 탁자에 앉아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거나, 아이들에게 소소한 잔소리로 할 것을 일러두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사실 이것이 저의 평범한 일상은 아닙니다.


올해 11월 교육기간이 끝나면 아마 새벽시간 느긋하게 누워, 발가락 꼼지락거릴 여유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예의 없이 제 몸을 마구 벌떡 일으킬지도요. 한낮의 클래식과 나만의 라면 만찬, 집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그 행복한 순간들은 사라질 테니까요.

글을 적다 보니, 참 행복이라는 게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많은 삶이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쁨의 순간을 일상 곳곳에 박아 두는 노력이 그 어떤 일보다 시급하고 중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순간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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