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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엄격함에 놀라다

싱가포르의 벌금

by Flying Angie

싱가포르에 막 도착해서 한창 적응하던 시기, 친구와 함께 MRT(지하철)를 타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목이 말라서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살짝 열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더니, 내 팔을 급하게 잡으며 속삭였다.


“야, 여기서 물 마시면 벌금이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벌금? 물 마셨다고 벌금?


싱가포르의 규칙, 생각보다 엄격하다


그때 알았다.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에서는 음식이나 음료 섭취가 절대 금지라는 것을. 단순히 규칙이 아니라, 실제로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되는 엄격한 법이었다. 지하철 내 벽면에는 과자 봉투에 커다란 금지 표시가 그려져 있었고, 아래에는 벌금 $500(약 50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하철 안에서 음식 먹는 걸 권장하진 않지만, 물 한 모금 정도는 눈감아주는 분위기다. 그래서 처음엔 이 규칙이 조금 과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내보니, 싱가포르 사람들이 이 규칙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지 알게 됐다. 덕분에 대중교통은 언제나 깨끗했고, 음식을 흘리거나 냄새로 불편해질 일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철저히 물을 참고 지하철에서 내리는 습관을 들였다. 그런데 몇 달 뒤, 이 규칙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피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지인이 나와 함께 MRT를 탔는데, 갑자기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며 먹으려는 거다. 나는 즉시 그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


“안 돼! 여기서 먹으면 벌금 내야 해!”


처음엔 지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벽에 붙은 벌금 안내문을 가리키자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는 과자를 급하게 가방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싱가포르, 진짜 엄격하네…”


처음엔 숨 막히게 느껴졌던 규칙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나중엔 그 질서의 장점을 느끼게 됐다. 지하철이 깨끗하다는 건 단순히 청소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가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조금 더 자유롭고 활기차다. 간혹 어르신들이 김밥을 먹거나 음료를 나눠 마시는 모습을 보면 따뜻한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닥에 흘린 음식물이나 버려진 음료 캔을 볼 때마다 싱가포르의 규칙이 떠오르곤 한다.


싱가포르에서 지낸 시간은 나에게 단순한 생활습관 이상의 교훈을 줬다. 엄격함이 때로는 질서를, 그리고 그 질서가 편안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사실.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면 물 한 모금조차 조심스레 마시게 되는 나를 보며, 싱가포르의 법과 질서가 내게 남긴 흔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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