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처음 갔을 때, 호커센터에서 티슈 한 장 때문에 머쓱했던 일이 있다. 점심시간이라 테이블이 꽉 차 있었는데, 겨우 빈자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허름한 티슈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순간 ‘누군가 깜빡하고 두고 갔나?’ 싶어서 슬쩍 밀어 두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Excuse me, this table is chope-d!”
뒤돌아보니, 쌀국수를 들고 선 아저씨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촙? 그게 뭔데? 속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몰랐다고 사과하고 얼른 자리를 비켰다. 그날 나는 싱가포르의 촙 문화를 처음 배웠다.
알고 보니 촙(chope)은 싱가포르에서 흔히 쓰이는 자리 맡기 문화였다. 테이블에 티슈나 명함 같은 작은 물건을 올려두면, 그 자리가 누군가의 것임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자리를 맡으려면 보통 책, 가방, 심지어 노트북 같은 중요한 물건을 올려둔다. 단순한 티슈보다는 눈에 확 띄는 물건이 더 신뢰를 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꽤 흥미로웠다. 싱가포르에서는 작은 티슈 한 장으로도 사회적 약속이 지켜지지만, 한국에서는 물건의 크기나 가치가 자리 맡기 신호의 강도를 결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자리 맡기 문화가 재미있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카페에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대부분은 그걸 존중해 준다. 물론 때때로 누군가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배려의 한 방식이다.
싱가포르의 촙과 한국의 자리 맡기 문화는 서로 다른 방식처럼 보이지만, 결국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싱가포르는 단순함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답게, 티슈 한 장이면 충분하다. 반면, 한국은 조금 더 눈에 띄는 표시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게 소지품이든 티슈든, 둘 다 상대방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지만, 나중에 돌아올게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비언어적 약속이다.
다음번에 카페에서 가방을 두거나 호커센터에서 티슈를 올릴 때, 이런 문화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작은 행동 하나가 담고 있는 신뢰와 배려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