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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n 06. 2021

#8 Shingle이 뭐야?

feat. 돼지 젖꼭지도 다시 보자.



사실 우리 남편은 한국어를 꽤 잘 한다.


한국생활 올해로 8년차를 맞이한 남편은 이제 어떤 곳을 가더라도 스스로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정도로 한국말을 잘 하는데, 병원만큼은 되도록 내가 꼭 동행하려고 한다. 병원에서는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남편이 무릎이 아프다기에 인터넷으로 괜찮아 보이는 병원을 추천해준 적이 있다. 대부분의사 선생님들은 영어를  구사하시기에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서 MRI 찍어야 한다고 했다는 거다. 그날 따라 의사선생님과 영어로 소통도 잘 안됐고 무릎이 조금 아픈 것뿐인데 MRI라니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내가 전화로 사정을 설명해줬고, 그냥 간단한 처치만 받고 집에 돌아온 후로 웬만하면 병원만큼은  같이 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의 전담 의료 통역사가  나는 그동안  많은 병원을 가보았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치과,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심지어 비뇨기과까지… (평생  잊을듯).


그냥 영어로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의료 영어는 훨씬 더 어렵다. 그동안 sick, painful정도만 알았지 따끔따끔하다, 시리다, 뻑뻑하다 등 이런 표현은 공부해본 적도 없거니와 질병명에 대해서는 더더욱 공부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 전에는 항상 남편에게 증상에 대해 먼저 들어보고 인터넷으로 표현이나 병명을 찾아본 뒤에 병원을 방문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병 이름은 ‘shingle’이었다.


나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그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불시에 등을 와락 껴안았다(신혼). 평소같았으면 ‘으음~ 굿’했을 남편인데 갑자기 엄청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아아아 아악~~~!!!


나 : 왜?? 왜 그래?? (그렇게 세게 안지도 않았는데...) 이젠 내가 안는 게 싫어?? ㅠㅠㅠㅠㅠㅠ

남편 : 아니, 그게 아니고 어제부터 등에 뭐가 났는지 따끔따끔 엄청 아프네. 내 등 좀 봐줄래?”

나 : 아, 그래? 알았어. 한 번 봐볼게. 음... 혹시 이거 말하는 거야? (등에 난 뾰루지를 콕콕 찌름)

남편 : 악!!!! 아파!!!

나 : (이해가 안됨) 그래? 이게 그렇게 아프다고? 종기도 아니고 정말 조그만 등드름인데?? 근데 되게 웃긴다. 뾰루지 3개가 일렬로 났네. 꼭 돼지 젖꼭지 같아. 하하하

남편 : 뭐? 일렬? 흠... 혹시 그거 사진 좀 찍어봐 줄래?

나 : 그래. 자, 이거 봐봐. 진짜 돼지 젖꼭지 같지. 하하하하

남편 : 음... 이거 좀 이상한데. Shingle 같아. 이모한테 물어봐야겠다.

나 : 슁글? 그게 뭐야? 싱글벙글? 하하하



 내가 속없이 웃고 있는동안 남편은 의사인 이모에게 사진을 보내 혹시 shingle이 아니냐고 물어보았고 그의 이모님은  shingle이 맞는 것 같다며 당장 신경외과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대체 shingle이 뭐길래 저렇게 심각하나 인터넷을 찾아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슁글은 다름 아닌 ‘대상포진’이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엄마가 대상포진에 걸려 크게 고생한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이게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고 있던 나는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우리는 가까운 신경외과를 검색해 바로 방문했고 역시나 대상포진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아주 초기에 발견한 터라 약만 잘 복용하면 큰 통증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1주일치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대상포진인 줄도 모르고 돼지 젖꼭지 같다고 놀린 게 뒤늦게 미안해졌다.


나 : 남편... 대상포진인 줄도 모르고 돼지 젖꼭지라고 놀려서 미안해...

남편 :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 : 근데 shingle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남편 : 네가 돼지 젖꼭지가 일렬로 났다길래.

나 : 아~~


 남편은 ‘일렬’이라는 단어에서 바로 대상포진을 떠올렸다고 했다. 대단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암튼 shingle이라는 병명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의 교훈 : 작은 돼지 젖꼭지도
허투루 넘기지 말자.



 * 나중에 찾아보니 shingle에는 ‘조약돌’이라는 뜻과 ‘일렬로 붙인 지붕’이라는 뜻이 있었다. 포진이 작은 조약돌처럼 생긴 점과 일렬로 붙여놓은 지붕 타일처럼 줄지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


 * 참고로 ‘대상포진(帶狀疱疹)’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띠같이 선의 모양을 이룬 포진’이라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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