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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n 13. 2021

#9 산소 흡수제는 눈에 보이는 곳에


“Damn it!!”


갑자기 남편이 육두문자를 날린다. 편의점에서 사 온 냉동빵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난 뒤 빵 밑에 붙어있는 산소 흡수제를 뒤늦게 발견한 거다. 정확히 말하면 빵을 받치는 종이 트레이와 빵사이에 산소 흡수제가 끼어 있었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바보같이 빵 밑에다가 산소 흡수제를 숨겨놓는 거야?!?”


패키지에 산소 흡수제는 빼고 전자레인지에 넣으라는 문구가 있었을 텐데 남편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오늘은 진짜 재수 없는 날이야!!! 아침엔 그 peach guy가 남겨놓은 주스를 주문하질 않나 아까는 너가 먹던 샌드위치를 바닥에 다 떨어뜨리질 않나!!”


오늘 아침 라떼를 사러 나갔던 남편은 웬 피치 스무디를 함께 사서 들어왔다. 처음엔 나를 위해 사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앞에 서 있던 어떤 남자가 키오스크 장바구니에 남겨놓은 피치 스무디를 얼떨결에 주문한 것이었다. 남편 이 오기 전부터 키오스크 앞에 서 있던 그 남자는 5분이 넘도록 키오스크를 만지작 거렸는데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버렸다고 한다. 5분이나 기다린 것도 열이 받는데 그가 장바구니에 남겨놓은 피치 스무디를 함께 주문한 남편은 음료가 나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실수로 그 음료를 주문했음을 깨달았다. 한국말로 사정을 설명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그 피치 스무디를 가져온 남편은 열이 받을대로 받아 있었다. 총액을 확인하지 않고 결제한 남편 잘못도 있지만 황당할만한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피치 스무디가 맛있어서 아주 잘 마셨지만 남편은 peach guy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암튼 이 빵을 먹어도 될지 말지 검색해보던 중 나는 실수로 산소 흡습제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물에 넣고 끓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과 산소 흡수제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폭발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헉. 산소 흡수제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폭발의 위험이 있대. 폭발하지 않은 거로 감사하자.”


최대한 긍정적으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씩씩댔고 결국 그 빵을 먹지 않고 버리기로 했다. 생각보다 성깔있는 남자다.


“그래. 버리고 싶으면 그냥 버려. 근데 이게 전자레인지에서 폭발하지 않은 거에 감사하자. 그럼 그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재수 없는 날이 됐을 거야.”


살면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경험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난 그런 경험이 있다.


“내가 예전에 실제로 냄비 폭발한 적 있다고 얘기했었나? 나 예전에 일본에서 혼자 살던 때 일인데 어느 날 갑자기 튀김이 너무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집에서 튀김을 해 먹겠다고 아무 냄비나 꺼내서 식용유를 가열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갑자기 기름에 불이 붙어서 냄비 위로 활활 타오르는 거야!! 그래서 너무 깜짝 놀라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싱크대에서 물을 떠다가 기름에 부었어. 하하하하하.”


“Oh, god...”


남편은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알겠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말 안 해도 알겠지? 불 붙은 기름에 물을 부으니까 불은 바로 꺼지더라고. 그래서 다행이다 하고 가스레인지를 껐는데 한 5초 뒤에 펑!!!!!! 하면서 시뻘건 불기둥이 부엌 천장까지 치솟았어. 난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고. 정말 순간적으로 ‘아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일본까지 와서 튀김 해 먹겠다고 설치다가 폭발사고 내고 죽는구나’하고 생각했어. 진짜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어. 한참 뒤에 가까이 다가가서 봤더니 천장에 꺼먼 그을음이 묻어 있더라고. 그때서야 아 진짜 하늘이 나를 도왔구나 싶더라. 하하하하하”


“That’s C.R.A.Z.Y.”


“응 맞아. 이 정도는 돼야 재수 없는 날이라고 할 수 있지. 남편은 인생에서 제일 crazy 했던 경험이 뭐야?”


“음... 글쎄. 별로 없는데. 아마도 불꽃놀이했었을 때려나? 예전에 친구랑 불꽃놀이를 하려는데 하늘을 향해 있어야 될 로켓 불꽃이 내 쪽으로 넘어진 적이 있어. 그래서 재빨리 커다란 나무 뒤로 숨었는데 로켓 한 발이 간발의 차로 내 머리 옆으로 스쳐 지나갔었지.


“와우. 남편도 거의 죽을뻔했네…. 아 맞다. 나 집에 고데기 켜놓고 나간 적도 있었다. 그것도 까만색 러그 위에 놓고 나가서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까 러그가 거의 노란색이 돼있더라고.”


“Oh, god. 제발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말아 줘.”


이렇게 서로의 사건 사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의 분노도 조금은 누그러진 듯 보였다. 그래도 앞으로 식품 회사들이 산소 흡수제는 잘 보이는 곳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이 예민한 남자가 또 폭발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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