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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n 17. 2021

#10 혼인요건증명서

드디어 혼인신고


 드디어 혼인신고를 했다.

 만난 지 2년 8개월 만에, 사귄 지 2년 6개월 만에, 같이 산 지 1년 반 만에, 결혼한 지는 6개월 만의 일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생판 남이던,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 남자와 법적인 부부가 되다니. 정말 인생이란 한치 앞도 알 수 없구나. 6월 15일에 제출한 혼인신고 신청서는  단 이틀 만에 처리되어 카톡으로 통보되었다.


 ‘귀하께서 제출하신 혼인신고서가 처리 완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역시 IT강국 대한민국.


 종이 몇 장과 신분증만 있으면 이토록 쉽게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이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엮인 관계를 끊는 것은 몇 백 배 힘들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우리는 그럴 일 없이 평생 오순도순 잘 살 테지만. 암튼 부부가 모두 한국인이라면 혼인신고서와 신분증만 있으면 됐겠지만 우리는 남편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혼인신고서와 신분증 말고도 ‘혼인 요건 증명서’라는 서류가 하나 더 필요했다. 말 그대로 이 사람이 혼인의 요건을 갖춘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서류인데 이 서류를 발급받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미국 대사관에 전화한다.

2. 미국 대사관에서 예약 가능한 날짜를 지정해준다.
3. 예약한 날짜에 대사관에 가면 담당 직원이
 ‘AFFIDAVIT OF ELIGIBILITY FOR MARRIAGE
(혼인 요건 증명서)’라는 빈 서류를 하나 준다.

4. 구석에 가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50달러를 지불한 뒤 담당 직원이 있는 곳으로 간다.

5. 담당 직원이 서류를 슥 훑어보고 “오케이. 오른손을 올리고 선서하세요. 당신은 본 서류에 쓴 내용이 사실임을 맹세합니까?”라고 물으면 “당연하죠!”라고 대답한다.

6. 그럼 담당 직원은 “오케이!”라고 말하고 당신의 서류에 도장을 쾅쾅쾅 찍어준다.

7. 이게 끝이다.


이게 다라고? 정말 이게 다라고? 영화에서 보면 컴퓨터에 사진만 넣어도 전직 MI6 뭐다 인적사항이  뜨던데. 영화와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적사항 조회는 커녕 선서가 전부인 작업이 50불이라니. 잔뜩 장했던 남편조차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혼인하기 적법한 미혼입니까?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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