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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n 27. 2021

#11 국제결혼해서 좋은 점


국제결혼을 해서 좋은 점을 한 번 써볼까 한다.


첫 번째. 밥을 안 해도 된다.


“그럼 너네는 평소에 뭐 먹어?”

밥에 진심인 민족인만큼 친구들에게 듣는 단골 질문이다.남편의 주식은 빵이고 나도 집에서 밥을 지어먹는 타입이 아니라 우리 집은 그 흔한 밥솥조차 없다. 대신 식빵과 땅콩버터, 잼, 치즈가 그에게는 밥이고 국이요 밑반찬인지라 이 4가지는 항상 구비되어 있다. 퇴근 시간이 달라 본인의 식사는 기본적으로 각자가 알아서 챙겨먹고 주말엔 외식을 하거나 파스타 등을 함께 만들어 먹는다. (요리를 자주 안해서 가스렌지가 잘 안켜질 때도 있다) 아내가 요리를 해주는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는 아주 가끔 토스트와 커피 한 잔만 차려줘도 10첩 반상을 받은 것처럼 고마워한다. 요리에 투자해야 되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아주 큰 장점인듯.


두 번째. 여성에게 불리한
호칭 시스템에서 해방된다.

“왜 내 남동생은 처남이고 자기 남동생은 도련님이야? 그리고 왜 우리 언니는 처형이고 자기 누나는 형님이야? 왜 나만 자기네 가족들한테 ‘님’을 붙여야 되는 거냐고!”


최근 들어 이런 호칭 시스템에 분노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나도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남편의 , 누나, 여동생, 남동생은 아주버님, 형님, 아가씨, 도련님인데, 아내의 형제자매는 처남, 처형, 처제와 같이 ‘자가 들어가지 않는다.(심지어 도련님은 결혼하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된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호칭이다.) 불공평하기 그지없다. 나이 문제까지 얽히면 서로 감정 상하는건 시간 문제다.


영어로 매제, 처남, 도련님, 아주버님 등등 남자 친척은 모두 brother-in-law이다. 시누이, 동서, 처형, 처제, 형님 등등의 여자 친척도 모두 sister-in-law라고 부른다. 그냥 모두가 brother sister데 뒤에 in law만 붙인 형태다. 그런데 이마저도 남에게 설명할 때만 쓰는 호칭이고 서로가 서로를 부를 때는 그냥 이름을 부른다. 나이 때문에 벌어지는 묘한 신경전도 없고 그냥 인간  인간이다. ( 대박인건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와 장모님은 모두 mother-in-law, 시아버지, 장인어른은 모두 father-in-law이다. 며느리는 daughter-in-law, 사위는 son-in-law. 뒤에 in-law 붙을  모두가 서로에게 아버지고 엄마고 딸이고 아들인 것이다. 실제로 나의 시어머니는 우리의 결혼식날 이제 자기도 daughter 생겼다며 나를  안아주셨는데 말로만 ‘딸같은 며느리 아닌 정말 ‘  기분이었다.


세 번째. 독립적이다.

남편에게 장난으로 ‘나중에 미국 가면 너네 부모님이랑 같이 살까?’라고 물어보니 그가 ‘미쳤어?’며 펄쩍 뛰었다. 미국은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하는 문화라 부모 자식 정서적, 경제적 독립이 확실히 되어 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건 진심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결혼까지 생각했다 헤어진 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당시 본가에서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내가 자취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지가 월세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혼자 나와서 사느냐, 월세가 아깝지도 않냐, 엄마랑 같이 살면 엄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얼마나 좋으냐며.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엄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줘서 좋다 말했던  순간 나는 그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걔는 아마 아직도 내가  자기랑 헤어졌는지 모를 거다. 엄마를 자기 대신 밥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남자라면 그 아내에게도 그런 역할을 기대할 것 같았다. 물론 그와 가치관이 맞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눈에는 그가 결혼 후에 누군가가 자신의 엄마를 대신해 빨래하고 밥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해줄  없었기에 그를 놔줬다.


반면 지금의 남편은 나의 독립 생활을 높이 평가해줬다. 대학교때부터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나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고,  어떤 면에선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을  있었던  나의 이런 독립적인 성향도   했었던  같다. 어느쪽이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나에게는 미국인인 남편이   맞았던  같고 실제로 결혼생활에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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