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한국어 공부하는 날이다.
그동안 대학원 과정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빠 한국어 공부를 소홀히 하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더니, 남편은 두 달 전부터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 다시 한국어 공부에 몰두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나는 이 날을 위해 텍스트를 고르고 또 골랐다. 재밌고 컴팩트하지만 유용한 표현들로 가득한, 남편이 좋아할 만한 텍스트.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는 짧고 빠른 호흡의 대화체가 인상적이다. 김영하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러스함이 엿보이는 대화 부분에 등장하는 단어의 절반은 아마 남편이 아는 것일 거고, 나머지 절반은 모를 것이다.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서 포기할 정도도 아닌 남편에게 아주 딱 맞는 수준이다.
- 실력이…많이 늘었네?
"What is 실력?"
첫 단어부터 모를 줄은 몰랐다.
"실력 is...ability"
"Oh, OK"
계속해서 읽는다.
- 어떻게...알아?
- 보면 알지
- 실은…모른다
"What is 실은?"
역시 짧은 문장은 잘 이해한다.
"실은 is…you know “사실”, truth, right? 실은 is short version of 사실은, the truth is, actually"
"Oh, I know 사실"
- 원고…안 넘기면..두건...씌워서...관…타나…모로...데려갈 건가?"
"Guantanamo"
"Oh, Guantanamo, haha"
우리가 외국 소설 읽다가 한국 관련 단어가 나오면 반갑듯 남편도 관타나모를 보자 반가운가 보다. 역시 미국인.
- 난 미국이...싫어. 제국주의자들!
"제국주의자 is Imperialist."
"Oh, haha"
자기 나라를 까는데도 좋아한다.
- 당신...딸...쫑이가? 미국의 대학...몇 군데에 어플라이를 한 모양이야,
"군데? Military?"
군데와 군대를 헷갈리다니 귀여워라. 이 맛에 한국어를 가르친다.
"No. Military is 군대. 데 is place"
"Woops"
- 장학금은...없어. 학부는...원래 그렇대
- 여기 금연이니?
"금연? I know 금. It's money, right? What is 연?"
비록 틀리긴 했어도 남편이 한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늘 탄복한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자까지 섭렵하는 남자!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This 금 is not money. It's PROHIBIT. 금지, 연 is SMOKE"
"Oh, then this means, can I smoke here? haha"
심각하게 돈 얘기를 하는 전처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여기 금연이니?'라며 말을 돌리는 주인공. 그것을 한국어로 이해하고 킥킥 대는 남편. 오랜만에 정말 행복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