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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n 19. 2021

북유럽 with 캐리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예능을 찾았다.

 개그우먼 송은이가 제작했다는 ‘송은이표’ 예능 <북유럽 with 캐리어>. ‘북유럽’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평소 같았으면 ‘또 여행 프로그램이군’이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코로나 블루 때문인지 오랜만에 이국적인 북유럽 풍경이 보고 싶어 채널 선택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런데 북유럽 풍경은 커녕 웬 책이 가득한 스튜디오에서 연예인들이 수다를 떠는 게 아닌가. 아, 저 연예인들은 패널이고 북유럽 여행 영상을 보며 수다를 떠는가 보다 하고 지켜봤는데 알고 보니 북유럽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가 아닌 ‘Book You love’을 소개하는 프로였다. 연예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 (Book U luv)을 추천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한마디로 낚인 거다. 제목에 낚인 것이 괘씸해서 채널을 돌릴까 하다 가수 양희은 씨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조금 더 지켜보았다. 양희은 씨를 중심으로 양 옆에는 MC 송은이와 김숙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유세윤, 오른쪽에는 김중혁 작가가 앉아 있었다. 남성 예능계에 유재석&박명수 콤비가 있다면 여성 예능계에는 명실상부 송은이&김숙(에레나) 콤비가 대세다.


 

 이 둘을 주축으로 왼쪽에 유세윤을 앉혀 깐죽 담당을, 오른쪽에 작가 김중혁 씨를 앉혀 전문성을 가미한 듯했다. 그동안 가운데에 남성 메인 MC, 양 사이드에 여성 보조 MC가 앉은 화면 구성에 익숙했던 시청자로서 신선한 화면 구성이었다.


 양희은 씨는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소장 서적들을 스튜디오로 옮겨 놓고 ‘최애’ 도서를 소개하면 MC들이 맞히는 건데, 곧장 책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 키워드만 설명한 후 게스트들이 책을 유추해보는 퀴즈 형식으로 소개하는 프로였다. 키워드를 들은 뒤 서로 정답을 맞히겠다고 책장 앞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건 개그맨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했을까. 다행히 스스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2회 때는 몸개그나 무리수를 띤 말장난이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웃음을 주는 프로는 좋아하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치게 투닥거리는 프로는 아무래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잔잔하지만 책에 대한 진심을 말하는 양희은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다음회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를 챙겨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 프로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중 또다시 우연한 기회에 방송 채널에서 타이틀을 발견하고 채널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자우림의 ‘김윤아’가 게스트였다! 김윤아를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나는 김윤아를 예능 프로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푸근해지고 포용력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오랜만에 본 그녀는 놀랍게도 상냥하고 친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5년 전 콘서트에서 봤던 치명적인 마녀는 어디로 간 거지? 심지어 김윤아는 10년 전에는 절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꽁꽁 숨겼었다던 본인의 웨딩앨범이나 아이의 사진들까지 이제는 공공재라며 옆집 사는 이웃처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뭐지 이 예능은…? 어떤 방송국에서 이렇게 잔잔하지만 강력한 프로를 만들었지? 방송국 이름을 보니 LG HelloVision이란다.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 개그우먼 송은이가 제작을 했단다. 나도 모르게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 그래서 타이틀이 ‘북유럽(Book U luv)’이었군 하고 납득이 갔다. 전작 <밥 블레스 유>도 심상치 않았는데. 참 작명 취향이 확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자로 거듭난 개그우먼 송은이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 제작사까지 찾아보게 만든 매력 있는 프로를 만든 기획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번 예능은 ‘장수’보다는 ‘퀄리티’를 우선해서 한 회, 한 회 알차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사실 밥 블레스 유도 초반엔 재밌게 봤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꾸역 꾸역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한 주 보고 잊히는 예능이 아니라 두고두고 소장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허할 때 꺼내 보고 싶은 인생 예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떤 게스트를 섭외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김윤아 님같이 다른 예능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연예인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장 먼저 떠오른 연예인은 장기하였는데 그의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니 뛸 듯이 기뻤다. 얼른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예능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헐뜯기는 예능 출연이 부담스러웠던 연예인들도 이 프로만큼은 좋아하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북 토크를 들어보고 싶다. 오늘은 김윤아 님이 추천해준 ‘김약국의 딸들’이나 읽어봐야겠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예능을 발견해 마음이 흐뭇하다.



마지막은 예쁜 김윤아님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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