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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Aug 02. 2021

얼른 와. 치킨 시켜 놓을게.



‘얼른 와. 치킨 시켜 놓을게.’


야근으로 귀가가 조금 늦어진 어느날, 나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 카톡을 보냈다. 짧은 두 문장을 보자 다 죽어가던 몸뚱이에 힘이 불끈 불끈 솟는다. 집에 가자마자 침대로 직행하려 했는데 치킨으로 목적지를 수정했다.


어린시절 치킨은 퇴근하는 아빠가 양손 가득 사들고 와야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늦은 밤 퇴근한 아빠가 들고 온 비닐 봉지 안에는 터질듯한 종이 상자가 가느다란 고무줄에 의지해 간신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 종이 상자를 열고 호일을 벗기면 뜨끈한 페리카나 양념치킨이 까꿍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다섯 살 터울인 언니와 나는 곤히 자다가도 양념치킨 냄새에 홀려 눈비비고 일어나 서로 다리를 먹겠다며 옥신각신했었고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보며 그저 허허 웃고만 있었다. 그러던 치킨이 이제는 남편이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주문을 해놓는 것이 되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정말 그렇다. 본인도 배고플텐데 와이프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시간 맞춰 치킨을 시켜놓는 센스있는 남편과  결혼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게 행복하다. 아빠도 우리가 퇴근시간에 맞춰 치킨을 시켜 놨으면 퇴근길이  신났을텐데. 나는 결혼전이나 결혼후나 여전히 입에 고기를 넣어 달라고 삐약거리는 아기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치킨을 세팅해놓고 나를 반겨줬다. 원래도  생겼지만 오늘 유독  잘생겨 보인다. 나는 원래  있는 치킨파지만 오늘만큼은 남편 취향인 순살치킨을 시켜놨어도 용서가 된다. 하지만 완벽한 그에게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는데, 그건 바로 닭다리를 손에 들고 뜯어먹는 맛을 모른다는 거다.


그는 닭다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깨작깨작 뜯어 먹는다…

LA갈비도 마찬가지다. 뼈에 붙은 고기가 제일 맛있는 법인데 젓가락으로 갈비를 야들야들한 고기만 대충 뜯어 아직도 고기가 더덕 더덕 붙어있는 뼈를 휙 버려버린다. 갈비는 모름지기 뼈에 붙은 고기가 제일 맛있는 법인데… 남편은  사이 사이를 발라먹는게 너무 귀찮다는데, 맛있는거 먹으려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되는거야 임마!! 라며 등짝을 날려주고 싶다.


암튼 그래서 남편은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을  있는 순살 치킨파다. 우리집에서 있는 치킨과 순살치킨은 탕수육의 부먹, 찍먹에 버금가는 민감한 이슈다. 후라이드, 양념 반반처럼 뼈있는 치킨, 순살치킨 반반 메뉴도 얼른 나왔으면. 햄버거랑 피자는 손으로 들고 잘도 먹으면서  치킨이랑 갈비는 차별하는걸까. 하긴 나도 인도커리를 손으로 먹으라면 기겁을 테니. 모두 나름의 기준이 는거겠지. 암튼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잘 먹는건 아니니까 어떻게 먹든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함께 즐겁게 먹는다는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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