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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ul 26. 2021

#13 게임 셧다운제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할까?



나는 게임을 잘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은 넷마블 테트리스였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갑자기 테트리스에 빠진 나는 근 한 달을 테트리스에 몰두했다. 밤낮이 뒤바뀌었던 건 물론이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10시간 동안 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 머리로는 게임을 그만 하고 컴퓨터를 꺼야지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허비한 나는 게임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고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우리 남편은 게임 예찬론자다. 그는 게임을 통해 친구도 사귀고 인생을 배웠노라 당당히 말한다. 지금도 비디오 게임, 보드 게임 등 장르를 불문한 모든 종류의 게임을 즐기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게임을 만들기까지 한다. 자기 할 일을 안하거나 현질을 할 정도로 몰두하는건 아니라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틈만 나면 유튜브로 게임 영상 보는게 취미인 그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부모가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싶어할 때 막을 수 있는 명목이 없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그는 나중에 게임을 막는 아빠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아빠가 될거란다. 게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그와, 게임할 시간에 책을 읽거나 다른 것을 하는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나. 게임에 대한 온도차가 극명한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늘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쩌면 게임에 대한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단은 마인 크래프트에 대한 기사였다. 마인 크래프트가 인증 문제 때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19금 게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사였다. 나는 마인크래프트가 어떻게 생긴 게임인지도 모르지만 게임광인 남편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남편, 이 뉴스 읽어봤어? 마인 크래프트가 한국에서 19금 게임이 될지도 모른대.”


“응, 당연하지. 한국 아이들이 참 안됐어.”


“이게 게임 셧다운제도? 그거 때문이라는데 게임 셧다운제도에 대해서도 들어봤어?”


“어, 완전 말도 안되는 법이던데.”


“왜 말이 안돼? 남편은 나중에 우리 애들이 새벽 3시, 4시까지 게임하고 학교가서 잠만 자다가 집에 와서 또 밤새 게임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아예 법적으로 컴퓨터가 꺼지면 속편하지 않아?”


“그걸 법으로 정한다는거 자체가 웃기단 거야.


자녀의 게임 시간은 부모가 정해야 되는 문제지 국가가 법으로 이래라 저래라 해야되는 문제가
아니야.


“애들이 오죽 부모 말을 안들으면 법으로 규제를 하겠어.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오지게 부모 말을 안듣는줄 알아? 난 나쁘지 않다고 봄.”


“게임 플레이 시간 같은 이슈까지 나라에서 법으로 규제하면 부모들은 점점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 할거야. 안그래도 책임감이 부족한 부모들은 이제 자기 자식이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는 것도 국가의 탓으로 돌리게 될걸? 그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해?”


“그렇긴 한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내가 게임하는걸 전혀 제재하지 않으셨어. 하지만 난 전혀 밤새 게임을 하거나 게임에 중독되지 않았어. 한 두번 정도는 밤늦게까지 게임을 해봤지만 그 후로는 절대 밤늦게 게임을 하지 않았지. 밤에는 졸려서 잠을 자고 싶지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 낮에 학교 끝나고 게임하면 되는데 왜 굳이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겠어? 넌 한국 애들이 왜 게임에 빠지는지 알아? 한국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학원에 가서 10시, 11시까지 공부를 해. 녹초가 돼서 집에 도착한 애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게임을 하는 것뿐이야. 그런데 그마저도 못하게 한다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대안도 주지 않으면서 그것마저 막아버리는건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이제 시대가 변했어. 마인 크래프트는 정말 창의적인 게임이야.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그런 게임을 못하게 막는 건 정말 바보같은 일이야.”


“그런가…”


“그리고 아이들이 게임을 새벽 3시까지 하던 4시까지 하던 그것 역시 그 아이들의 자유야.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직접 밤늦게까지 게임을 해봐야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스스로 배울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훨씬 더 좋은 교육이지. 그걸 법으로 못하게 막는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야.”


“…”


평소엔 남편에게 말발로 지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완벽히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어쩜 다 조목조목 맞는 말만 하는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남편이 한국에서 평생을 보낸 나보다 한국 청소년의 삶을 더 잘 이해하는 것도 신기했다. 직업상 학교에서 많은 한국 아이들을 보다보니 저절로 습득이 됐나 보다. 하긴 나도 한번 호되게 중독을 경험해보고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는 인간이 되지 않았는가. 책임을 배울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게임 셧다운제도는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될 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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