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들 May 06. 2021

Prologue

굴튀김 대신 남편

 



 어떻게 하면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을지 묻는 독자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써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테면 굴튀김 같은 거 말입니다’라며 직접 굴튀김에 대한 글까지 썼다.



추운 겨울날의 해 질 녘에 나는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삿포로 중간 병)와 굴튀김을 주문한다. 그 가게에는 다섯 개짜리 굴튀김과 여덟 개짜리 굴튀김,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정말 친절하다. 굴튀김을 많이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굴튀김 큰 접시를 내어준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에게는 굴튀김 작은 접시를 내어 준다. 나는 물론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주문한다. 오늘 나는 굴튀김을 배불리 먹고 싶으니까.  

 굴튀김에는 잘게 채 썬 양배추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 달착지근하고 신선한 양배추다. 원하면 추가로 주문할 수도 있다. 추가 요금은 오십 엔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로 굴튀김 그것이 먹고 싶어서이지 곁들여 나오는 양배추를 먹으러 온 게 아니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 실린 이야기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은근히 유명한 <굴튀김 이론>.

평범한 자기소개 대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라니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다. 자기소개가 아니라 ‘자기 소설 불리는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 성장배경을 써야 되는 란에 가장 써서는 안되는 것은 성장배경이다.

저는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 3남매의 장녀로 태어났으며~’라고 쓰면  되는 성장배경. 성장배경 쓰라며. 성장의 기본은 가족 아니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기술하시오라고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쓰는 사람도 재밌고 읽는 사람도 재밌고.


 내일 모레면 불혹인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면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뭘까. 아마 지금으로썬 우리 남편일 것이다. 따끈따끈한 신혼인 우리. 그럼 내친김에 그에 대해서 글을 써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인생에 불쑥 들어온  남자. 미국에 가본 거라곤 일주일짜리 뉴욕 여행이 전부인 나의 반려견이, 아니 반려자가   초록 눈의 미국 남자에 대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