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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Nov 07. 2021

#18 결혼하길 잘 했어



“아아아악~~!!!”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한가로이 책장을 정리하던중 나무로 만든 파일철이 내 왼쪽 엄지발가락 위로 떨어졌다. 발가락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통증으로 한 마리의 동물같이 울부짖었다.


“What’s wrong?? What happened??”


설거지를 하던 남편은 내 비명을 듣고는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달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왼쪽 발을 부여잡은채 신음만 내뱉었다. 남편이 발가락을 만져보려 하자 나도 모르게 “만지지마!!”라는 앙칼진 말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당장 냉장고로 달려가 얼음을 찾았지만 얼음은 없었고 급한대로 냉동 볶음밥을 가져와 내 발에 대주었다.


“I’ll go get the ice, okay? Wait just a second.”


남편이 편의점에 얼음을 사러간 동안 나는 꼼짝않고 자리에 앉아 냉동 볶음밥 봉지를 발가락에 대고 생각했다. ‘발가락뼈가 부러졌으면 어떡하지?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되나? 내일부터 재택근무를 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편의점에서 돌아온 남편은 나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고 베개를 발 밑에 대서 심장보다 높이 위치하게 한 뒤 타올을 받치고 얼음을 대주었다.


“일단 이렇게 15분 정도 있어봐.”

“내 뼈 부러진건 아닐까?”

“뼈는 안 부러졌을 것 같아. 부러졌으면 지금쯤 말도 못하게 아플거야. 일단 15분 정도 기다렸다가 그래도 많이 아프면 엑스레이 찍으러 가자.”

“알았어”


남편은 내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다시 설거지를 하러 돌아갔다. 그렇게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으니 5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 때는 혼자 자취하던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실수로 유리조각을 밟고 발바닥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모든게 내 실수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고 혼자 사는지라 누구도 나의 아픔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발바닥을 수건으로 대충 감싸고 택시를 불러 절뚝절뚝 혼자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혼자 병원을 접수하고 마취를 받은 뒤 발바닥을 꼬매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설거지를 다 마친 남편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아, 라고 투정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뭘 먹으면 괜찮아질까? 남편이 물었고 나는 ‘양념치킨’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민~~~’이라고 외치며 능숙한 솜씨로 양념치킨을 주문했다. 15분 정도 지난 후에 발가락을 보니 살짝 찢어진 상처는 있었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얼음을 빨리 댄 덕에 붓기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발가락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보니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은 것 같다. 양념치킨이 도착하자 남편은 다시 나를 번쩍 들어 거실 소파에 눕혔다. 그릇과 포크를 세팅하고 최대한 내쪽에 가깝게 테이블을 당겨주었다. 소파 위에서 양념치킨을 우물우물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결혼하길 참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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