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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Aug 12. 2022

어느 쫄보의 고백


드디어 건강검진의 마지막 순서다.

위내시경 센터 앞에 가니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바글바글 모여있다. 예약 판넬에 팔찌를 갖다대니 위내시경 순서 30번으로 내 이름이 올라간다. 생애 첫 내시경이다. 아직 돌도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나인데, 회사에서는 나이가 됐으니 내시경을 받으란다.


일반내시경과 수면내시경, 위조영술 3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위조영술은 일단 제끼라는 글이 많아서 일단 제꼈고, 일반내시경과 수면내시경이 남은 선택지였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입 안에 내시경을 넣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취를 하는 것도 싫고...위조영술을 받자니 조영액에 든 바륨이 몸에 그리 좋지도 않고 방사선 노출량도 만만치 않다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수면 내시경으로 결정했고,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순번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나는 수면 내시경에 대한 검색을 멈출 수 없었다.

 

수면내시경은 ‘자면서’ 하는 내시경일까? 답은 ‘아니오’다. 수면내시경이란 과거 필자가 처음 쓰기 시작한 말로, 정확한 명칭은 ‘의식이 있는 진정내시경’이다. 의식이 전혀 없는 마취상태가 아닌, 의식이 있되 진정시킨 상태에서 내시경을 한다는 뜻이다.

 

음? 자면서 하는 내시경이 아니라고?? 이건 내 예상이랑 다른데?

 

전신마취와는 다르다. 세간에 알려진 수면 내시경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치 전신마취처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은 수면유도제를 투여하여 몽롱한 상태로 만들 뿐이다.

 

이런 글들은 왜 직전에 닥쳐야만 보이는 걸까?


몇 년 전, 신경치료가 신경을 '치료'하는 시술이 아니라 신경을 '제거'하는 시술이라는 것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나는 이번에도 속았다는 생각을 하며, 아까 접수할 때 읽었던 수면 위내시경 주의사항이 다시 떠올랐다.

 

환자가 무의식중에 기구를 세게 깨물어서 치아 손상 발생시 병원에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빨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그럼 돈이... 물론 극소수의 예시겠지만...그게 나면 어떡하지?? 그 때 간호사가 한 환자를 불렀다.

 

"조기석님~"

 

예약자 판넬을 보니 아직 순번이 한참 남은 사람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사람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봤더니, INJECTION ROOM이라고 쓰여진 방으로 들어갔다. 주입하는 방? 그게 뭐지?


잠시 후 남자는 손목에 링거맞을 때 쓰는 바늘을 꽂고 나타났고,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보였다. 심기가 불편한 남자 곁에 간호사가 앉으며 친절히 말했다.

 

"확인해봤는데 바늘은 제대로 들어갔고요, 이게 조금 불편할 수는 있어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수면 내시경 마취할 때 쓰는 바늘이구나.... 수면 마취라길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을 몇 번 쉬면 잠에 스르륵 빠지는 건줄 알았는데, 정맥주사였구나... 주사 바늘을 보니 두려움이 급격히 몰려왔다. 가뜩이나 혈관이 잘 안보이는 타입이라 병원에 갈 때마다 고생하는데... 오늘도 채혈 검사때 혈관이 잘 안보여서 제일 가는 주사바늘로 채혈을 하느라 한참이 걸린 참이었다. 갑자기 위조영술로 변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나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간호사 데스크를 서성거렸는데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보시면 색깔이 살짝 얼룩덜룩하죠? 이게 염증인데 정확한 결과를 알려고 오늘 조직검사도 진행했어요. 그래서 살짝 피가 날 수는 있고요."

 

공포심이 한계에 다다른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바빠보이는 간호사 한 분을 붙잡고 다짜고짜 위조영술로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위조영술로 바꾸겠다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줄 알았는데, 간호사분은 의외로 변경이 가능한지 알아보겠다고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기를 5분 정도, 간호사는 변경되었다며 바로 위조영술 검사실로 가면 된다고 안내해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위조영술실 앞에는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방사선사님도 안계셔서 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는데, 검사실로 들어가자 방사선사는 바륨 조영액을 나에게 건넸다. 꾸덕꾸덕한 하얀색 페인트같은 조영액을 꾸역꾸역 마시고 나니 정면의 엑스레이 모니터상에 용액이 흘러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오... 신기해... 내 식도와 위장이 저렇게 생겼구나...


퍼온 사진



 장의 사진을 찍은  이번에는 기포제와 용액을 함께 먹으란다.  뿐만 아니라 트림이나 기침이 나도 절대 하면 안되고 최대한 버텨야 한다는 미션까지 주어졌다. 또다시  허연 페인트를 마시고 나니 용액이  아래까지 내려가 장까지 흘러간 것이 보였다. 방사선사는 이번에는 조영액이 위장에 골고루 발라질  있도록 엑스레이 판에 누워서 오른쪽으로 2바퀴만 구르란다.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당황했지만 골고루~ 골고루~ 발라질  있도록 최대한 정성스럽게 오른쪽으로 2바퀴를 굴렀다.


이 때 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처음 보았는데 입가에 허연 페인트가, 아니 용액이 묻어 마치 콧물 분장을 한 개그맨처럼 보였다. 손으로 닦아내려고 하자 방사선사는 용액이 기계나 옷에 묻으면 절대 안된다며 극구 말렸다. 어쩔 수 없이 입가에 허연 용액이 묻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방사선사의 요구에 따라 몸통을 이쪽 저쪽으로 틀어가며 열댓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검사가 완료되었다.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니 용액을 빨리 배출하려면 물을 많이 마시라는 방사선사의 말이 따라왔다. 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검사실을 나와 정수기에서 세 컵 정도의 물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컵이 워낙 작아 다 합쳐도 200ml도 안되는 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회사로 출근하여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문득 '위조영술 부작용'를 검색해보고 싶어졌다. 단박에 '위조영술 부작용 변비/후유증'이라는 글이 가장 상단에 검색되었다.

 

위에서는 누르는데 바륨현탁액이 단단히 뭉쳐서 직장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아무리 괄약근에 힘을 줘도 나오지 않고, 표피가 손상되었는지, 혈관이 파열됐는지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

 

생각보다 심각한 변비 부작용 후기에 겁이 난 나는, 이제라도 먹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물 2컵을 연거푸 들이켰지만 이미 3-4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 또한 하루가 지나도 아랫배가 묵직하기만 하고 신호가 오지 않는 것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튿날 (약간의 고통은 있었지만) 배출에 성공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물을 보니, 정말 물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나도 직장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국가검진에서 2년마다 시행하는 위장조영술의 경우 1회 검사로 6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며 이는 연간 허용치의 6배에 해당하고, 오염된 생선을 매일 1마리씩 90년간 섭취할 때 노출되는 방사선량에 맞먹는다고 꼬집었다.

 

이번 연구에서 각종 방사선 검사에서 방사선 피폭량은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 보고서(2008년) 기준으로 가슴방사선촬영은 0.02m㏜, 골밀도 검사 0.001m㏜, 위장조영검사 3.4m㏜, 대장이중조영검사 7.4m㏜, 유방촬영검사 0.26m㏜를 적용했다. 검사 자체로는 위장 및 대장조영검사가 상대적으로 방사선 피폭량이 많고, 대장이중조영검사가 위장조영검사보다는 2배가량 많았다.

 

이번에는 피폭량이 나를 괴롭혔다. 기사에 따라 수치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위장조영검사는 대체적으로 3~6mSv의 피폭량을 나타내서, 연간 전신 피폭량 한도인 1mSv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아, 원전 피폭 무서워서 여행도 안 갔건만 부질없는 짓이었구나... 연간 한도치의 3~4배에 달하는 방사선에 피폭됐다고 생각하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방사선에 피폭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검진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시경을 해야될 텐데 쫄보인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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