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들 May 12. 2021

#4 겟 아웃!!

예비 시월드 탐방



“이번 여름에 같이 미국 여행가지 않을래?”



 우리가 사귄지 6개월이 되었을 즈음 그는 여름휴가 때 함께 미국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간 김에 부모님에게 인사도 하자는...!



 ‘만난 지 1년도 안됐는데 같이 미국 여행을??

내가 널 뭘 믿고?? 그리고 벌써 부모님을??

혹시... 부모님이 인종 차별 주의자면 어쩌지??

째깐한 동양 여자애가 왔다고 무시하는 거 아닐까!?’



 사서 걱정하는 게 취미인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가 땡겼던 나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고 3일 동안 고민한 끝에 미국에 가는 게 나에게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어차피 부모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 가서 저런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한다면 그건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인종 문제는 물론이고 나는 그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지 않은가. 한국의 부모님들이라면 내 이름보다 ‘노산’을 더 먼저 물어보실 거다. 미국 사람이라고 크게 다를까. 나 싫다는 사람에게 나 좀 좋아해달라고 매달릴 자신은 없다. 나는 부모님을 빨리 뵙는게 내게 이롭다고 생각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인=인종차별주의자’ 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인종차별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3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 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스스로 변할 수는 있겠지만 타인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그 시간에 내가 먼저 바뀌던지 나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는데 암튼 어쩌다보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예비 시월드 탐방이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것이고 그 분들의 생각을 존중할 것이다. 나를 좋아해 주면 땡큐고 아니면 여기까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차피 나도 그들에게 점수를 매길 것이기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나도 얄짤없이 안녕을 고할 것이니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쿨해졌지. 스스로 대견해하며 미국행 티켓을 끊고 출국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그 놈이 찾아왔다.



‘남자 친구 부모님이 진.짜.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쿨함이 애써 누르고 있었던 불안이라는 녀석이 고개를 불쑥 쳐든 것이다. 젠장.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인종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 나를 인종차별하면 ...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진짜로 그의 부모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남자 친구와 말처럼 쉽게 헤어질 수 있을까? 난 아직 그를 사랑하는데.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글을 읽어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자 친구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너네 부모님 설마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시지? 라고.



 나는 날을 잡고 남자 친구에게 영화 ‘겟 아웃’을 보여주었다. 순진한 내 남친은 영화에 몰입해 아주 재밌게 영화를 시청하였다. 겟 아웃은 진짜 수작이다. 나는 세 번째 보는건데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나 : 영화 어땠어? 설마 나한테 미국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호호호호.

그 : ???? 뭐? 너 설마 그래서 나한테 이 영화 보여준 거야? 하하하. 걱정하지 마. 우리 부모님들 엄청 쿨해.

분명히 너를 좋아하실거야.




하긴. 자기 부모님이 나쁜 분들이라고 말할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바보같이 하나마나 한 질문을 했다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모  아니면 도다.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결론은, 예비 시월드 탐방을 앞두고 불안과 쿨함을 오갔다는 이야기 :)









매거진의 이전글 #3 심심함과 약간의 타이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