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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an 20. 2023

손절의 역사

뜬금없이 써 보는 지금까지 내가 손절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


첫 번째, 내 스무 살 무렵의 베프.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베프였다. 혹은 나만 혼자 베프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당시 짝사랑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 오빠에게 딱지를 맞고 말았다. 그녀는 슬퍼하던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그로부터 이틀 후 나에게 말했다. 어제 그 오빠와 잤다고. 나는 딱히 그녀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의 번호를 지우고 연락을 끊었다.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묻는 말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친구와는 영원히 작별했다. 그녀는 정말 이유를 몰랐을까.


두 번째도 나의 이십 대 무렵의 친구. 그녀와 나는 취향이 맞아 학교 밖에서도 곧잘 어울리곤 했다. 그날도 만나서 쇼핑을 하기로 했는데 그녀는 자그마치 1시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아이는 가타부타 설명이나 사과 없이 바로 ‘쇼핑하러 가자!’라고 말했다. 벙찐 나는 ‘넌 나한테 미안하지 않아?’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난 별로 사과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이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밟고 있는 기분이 들뿐. 그래서 그 친구와도 그대로 작별하고 말았다.


세 번째는 삼십 대 무렵의 친구. 그녀는 계란 한 판이 되기 전에 꼭 시집을 가야 한다며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서둘러 결혼했다. 나는 기꺼이 결혼식에도 가고 축의금도 두둑이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녀와 나의 관심사의 일치율은 0에 가까워졌다. 그녀는 만나기만 하면 시댁 욕, 남편 욕, 아이 자랑을 늘어놓았고 내 연애사나 회사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마치 시댁 욕을 담기 위해서 온 쓰레기통 같았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정작 내가 그녀를 필요로 할 때 만날 수 없었다. 나도 가끔은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고민 얘기도 하고 싶은데 내가 필요할 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시댁에 아이에 몸이 열 두 개라도 모자란 그녀의 베프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동네 또래맘으로 이미 대체된 듯 보였다.


여기까지 적어보니 나도 참 만만해 보이는 인간이었나 싶다. 나도 어디 가서 기 센 거로는 지지 않는 타입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은 건지. 여러분들은 몇 명의 사람을 왜 손절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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