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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an 16. 2023

나는 사실 할머니가 싫지 않았다.


사실 난 할머니가 싫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세 아들을 키운 할머니는 세 며느리에게 혹독한 시어머니였다. 세 아들은 홀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가득했고 세 며느리는 할머니 때문에 신음했다. 명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매일이 고통이었다. 큰 집은 고부갈등 때문에 큰 아버지가 큰 엄마에게 손찌검까지 했고 큰 엄마는 결국 암까지 걸렸다. 둘째인 우리 집은 물론 막내인 작은 집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딸만 둘 낳은 우리 엄마는 할머니에게 미역국은 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이모들이 집에 놀러 와도 문전박대를 받았고 갖은 수모를 겪었다. 사실 실제로 보거나 기억나는 건 없고 다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다. 엄마는 늘 할머니 욕을 했다.



할머니는 손주들을 예뻐했다.


아들을 못 낳은 며느리를 구박한 것치곤 손자, 손녀 구분 없이 예뻐했다. 나만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고 무릎에 앉히지 못해 난리였다. 사촌오빠와 차별을 받아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난 할머니에게 냉랭하게 굴었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는 엄마의 적이라는 것이 각인되었는지 할머니와 잘 지낸다는 것은 엄마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과자를 챙겨주며 자기 무릎에 앉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을 보며 마음속으로 갈등했던 일곱 살의 어느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할머니 무릎에 앉으면 엄마가 슬퍼할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싫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주는 과자도 사랑도 받지 않았다.


내가 사춘기일 때도 할머니는 여전히 나에게 애정을 갈구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한 할머니가 갑자기 좋아질 리 없었다. 오히려 명절 때마다 일어나는 분란을 내 눈으로 보고 나니 할머니가 더 적극적으로 싫어졌다. 여전히 할머니에게 냉랭하게 굴었고 이는 아빠의 분노를 불러왔다. 지금 생각하면 내 태도가 부부싸움의 원인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할머니가 모든 불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은 문제 같다. 아빠는 매일 입버릇처럼 너네 할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냐며, 할머니에게 잘하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20년도 더 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 중 할머니는 꽤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엄마의 비난의 범위는 나날이 넓어졌다. 너네 할머니, 너네 아빠, 너네 큰 엄마, 너네 성씨 집안… 너네 집안이면… 나도 포함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엄마를 위해 할머니를 적으로 돌렸는데 결국 나도 그 성씨를 가진 사람이니 똑같은 건가?


엄마는 내가 외할머니에게는 다정하게 굴기를 바랐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성격도 무뚝뚝하고 아들딸 차별을 대놓고 하시는 분이었다. 손자는 우쭈쭈 물고 빨지만 손녀인 나는 마당에 풀어놓은 닭 보듯 하시니 우리는 데면데면한, 싫지도 좋지도 않은, 인사만 하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부모와 이렇다 할
정서적 유대감을 나누지 못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하며 쪼글쪼글 주름진 얼굴에 살을 비비는 친구를 보고 부러움이 밀려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따뜻하고 부럽던지. 동시에 나는 할머니가 있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몇 년이 지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가 나에게서 할머니를 빼앗아 간 것이 아닐까.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할머니 흉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할머니가 건네는 과자에 홀려 순순히 할머니 무릎에 앉지 않았을까.


갑자기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문득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글을 읽다 보니 나도 할머니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어 졌는데, 나는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와 같은 글은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글은 영영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저격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가니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두 할머니 모두 돌아가신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이들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사랑한 만큼 슬픔도 크겠지. 슬픔이 없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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