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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Jan 15. 2023

글을 잘 쓰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아니 사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고 조금은 안다. 최근에 남편이 앱을 만들겠다고 코딩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젠 백엔드 쪽까지 직접 해보겠다고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까지는 무리지 않겠어? 진짜 할 수 있겠어?”

“방법이 세상에 다 나와 있는데 못할 게 어디 있겠어. 문제는 그걸 다 읽고 해 보는 게 문제지”


그래, 니 말이 맞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더 이상 비기(秘技)따윈 없다. 대신 눈앞에 방법이 깔려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몸뚱이가 문제지. 글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내가 문제다.






나는 유년시절의 절반을 미술학원에서 보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미술학원으로 가서 거기서 저녁도 먹고 10시가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뭐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없었고 그냥 그리는게 재미 있어서 그리고 또 그렸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 십중팔구는 꼭 연필로 시커멓게 된 그림을 가져와서 ‘선생님 그림 망쳤어요 새로 그릴래요’ 라며 울상이 되곤 했다. 그럼 나는 지우개를 들고 와서 연필로 시커멓게 된 부분을 슥슥 덜어내고 사사삭 톤을 메꿔서 수정해주고 말했다.


“세상에 망한 그림이란 없어.
연필이랑 지우개만 있으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어“


물론 종이에 구멍을 뚫어 버렸을 때는 나도 어찌해줄 방도가 없지만 말이다.


인생도 그런 거라 생각했다. 양 손에 지우개랑 연필을 들고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숨이 끊길 때까지 고쳐가는 것. 지우개를 안 가져왔으면 옆에 앉은 애한테 빌려서 쓰면 되고 연필이 부러지면 다시 깎으면 된다. 그냥 계속해서 그리고 또 수정하는 거다.


또 한 가지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것은 강약조절이다.

가장 앞에 있고 중요한 곳은 강조하고, 배경에 있고 중요하지 않은 곳은 부드럽게 풀어줘야 감상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원근감있는 그림이 된다. 그래서 미술학원 선생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잡고, 풀고, 잡고, 풀고다. 그 놈의 잡고 풀고.


글도 그림처럼 물 흐르듯이 부드럽지만 강약이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부드러운 풀밭에 잡초나 돌멩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 엉성하고 껄끄럽다. 쓸데없는 부사가 난무하고 갑자기 쓸데없이 디테일했다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앞뒤 설명없이 추상적인 말로 마무리한다. 텅 빈 머릿속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다.


나는 왜 브런치를 할까


그림은 비교적 주관적이라 작가가 100이라고 표현해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0으로 해석될 수도 1000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감상자가 사랑을 표현한거지? 라고 해도 아닌데? 난 증오를 표현한건데? 하고 도망갈 구멍이 있다.


하지만 글은 그림과는 다르게 지극히 객관적이고 정확해서 100이라고 쓰면 100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그게 글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내가 쓴 글이 읽힌다는 것은 내 머릿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고, 여전히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를 하는 이유는 글을 잘 쓰고 싶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브런치를 쓴 지도 벌써 2년이 된다. 2년동안 다음 메인에 걸려 보기도 하고 악플도 받아봤다. 그럼 2년동안 글쓰기 실력이 늘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보시는 대로 여전히 갈팡질팡 뒤죽박죽인 글을 쓰고 있다. 그림을 망쳤다고 울상이 돼서 왔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내 얼굴도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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