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자주 도망간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 장소, 대상,
모든 것으로부터.
내 첫 도망 기억은 버스에서였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등교하기 위해 탄 버스 안에서 별안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기간이었는데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또 시험은 쳐야 하고, 숨죽인 듯 조용한 교실 안에서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낯설고, 생경했다. 나쁜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혹시나 들키진 않았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교복을 입은 또래 친구들이 정신없이 웃고 떠들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안심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싶었다. 바다를 보고, 바람을 쐬고 싶었다. 탁 트인 공간에 나를 내버려 두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가지 못했다. 등교를 했고, 시험을 쳤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냈다. 도망 이후에 찾아올 현실에 맞설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사라지고 싶었다.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돌아와야 한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주 도망가고, 돌아온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꾹 참았다가 틈이 생기면 도망간다. 도망가고 싶어지는 대부분은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이번 일’만 끝나면 도망가야지 하고 꾸역꾸역 참다가 ‘이번 일’이 끝나면 진짜 도망가거나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도망가야 한다. 싫은 것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그렇게 잠시라도 도망갔다 돌아오면 버틸 만해진다. 어쩌면 ‘도망의 힘’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