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이 시작된 지 벌써 1년 10개월 가까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실시된 둘째 날 어이없게도 코로나19에 걸렸다. 어디서 어쩌다 걸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동거인은 나보다 이틀 먼저 확진됐고, 나는 그 뒤를 따라 확진 결과를 받아들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보건소의 안내에 따라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거나 재택 치료를 선택하게 되는데, 동거인은 나 때문에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갔고, 나는 동거인과 함께 키우는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재택 치료를 선택했다.
약 세 달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미미(7세, 남아, 스코티시 폴드)는 과연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되는 게으름뱅이 고양이다. 하루종일 하는 것이라곤 자거나 먹거나 싸거나 놀거나. 인간의 욕심이 만든 인위적인 종이라는 점에서 미미의 무위도식은 인간 탓이니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게 맞으나, 독립적 생존이 불가능한 생명체이기는 사실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미미에 대한 동거인의 정책은, 미미가 침대 위에 올라가거나 침대 밑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미가 침대 위로 올라가면 이불에 고양이 털이 묻어서 우리의 재채기를 유발하기 때문이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면 침대 밑 방바닥에 가득한 먼지를 미미가 발에 묻혀서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도 미미는 호시탐탐 침대를 노리고 있었나 보다. 동거인이 생활치료센터로 가고 나만 집에 있게 된 지 이틀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내가 자는 사이 미미는 내 머리맡에 누워 함께 자고 있다. 사실 미미가 털을 뿜뿜하며 내 코 가까이에 있으면 재채기가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보다도 언제나 느껴지던 사람의 체온이 사라지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외로움을 고양이의 체온으로 대체하게 됐다. 미미는 내 얼굴 오른쪽에 엎드려 자고 나는 그런 미미의 털을 쓰다듬으며 잠에 빠져든다. 고양이에게 위안을 얻게 된 것이다.
고양이가 주는 또 다른 위안은, 나만을 의지하는 존재에게서 얻는 뿌듯함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내 몸이 아픈 와중에도 미미가 배고프다고 냥냥거리면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건식 사료와 습식 사료를 적당히 섞어 고양이 밥그릇에 넣으면 미미는 밥그릇에 고개를 넣고 허겁지겁 먹는다. 나에게만 의지하는 작은 생명체를 향한 책임감이 코로나19로 하잘 것 없이 느껴지는 내 몸과 마음에 뿌듯함을 채워준다. 이렇게 보면 미미는 나에게 의지하고 나는 미미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하루 서너 번 정도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동거인과 영상통화를 할 때, 우리의 단골 주제는 각자의 몸 상태 걱정과 미미다. 함께 사는 사이니 서로의 몸 상태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금새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주제다. 항상 무겁고 우울하기만한 대화를 누가 이어가고 싶을까. 그럴 땐 함께 미미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 미미의 상태와 지금 미미의 행동을 보며 웃는다. 비록 미미와 멀리 떨어져있지만 나의 동거인 역시 미미에게서 위안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까지 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나 외의 다른 존재를 온전히 책임지기에는 나는 나 하나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미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그 동물을 내가 오롯이 책임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동물이 나의 감정적인 빈 공간을 채워주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였다. 미미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나와 동거인과 미미에게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