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자신을 침잠하기로 하다.

가끔 나도 나를 모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by 진서

'오늘의 하루' 같은 유치한 글이 대다수지만 일기는 자주 썼다. 종일 있었던 온갖 일과 그때의 기분을 기록하다 보면, 그제서야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 듯하다. 심지어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은 하루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기록하는 것이 매일 텃밭에 물을 주고 일구는 일이라면 도대체 내가 어떤 토양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하루뿐 아니라 한 달, 일 년, 먼 과거까지 깊고 넓게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겠다는 깨달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서전이라도 써봐야하는 걸까.


자서전[自敍傳].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전기. 회고록.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다음과 같은 이유로 쓴다고 한다.


'자신의 행적을 회고하기 위해'

'인생의 업적을 여러 사람과 후손에게 알리고 싶어서'

'죽은 이후에도 기록으로 남기 위해서'


자서전은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에 가서 쓴다. 나는 아직 회고라고 표현할 만큼 인생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에게 알릴 만한 행적이나 업적도 없다. 그저 나 자신을 좀 더 알고 싶을 뿐.


어렸을 적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따. 당시 유행하던 개그프로그램을 곧잘 따라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셋이서 노래방에 가면, 말도 아직 제대로 못하는 녀서기 제일 먼저 나서서 뽀뽀뽀 주제가를 불렀다고 한다. 좁디 좁은 단칸방에 살았고, 햄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이었지만, 부족한 것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부모님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새벽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내 무릎에 유리 파편이 튀어 피가 나고 있었고 아빠는 술에 취한 채 옆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빠는 건설 현장을 전전하셨고, 나는 조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새벽시간 TV 속 애국가 소리, 가마솥 불 때는 소리, 소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대부분 술에 취해 계셨고, 할머니는 종종 심술 궂으셨지만 좋은 분이셨다. 집에서 대화는 많지 않았다.


엄마는 여기저기 식당을 전전하며 서빙을 했다고 한다. 다른 남자들 몇몇과 인연이 있었지만, 결국 상처만 남았다는 것 같다. 엄마는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한 달에 두어 번씩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할머니가 전화를 받으면 그냥 끊어버리곤 했다.


체육대회나 소풍은 정말 곤욕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표 도시락'이 너무나 부러웠다. 특히 깨소금이 들어간 예쁜 유부초밥이 그랬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싸주신 김밥은 볼품없고 부끄러웠다.

학교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았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로 기가 죽진 않았다. 가끔 학교에 가기 싫어서 눈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대체로 즐거운 학교 생활이었다. 비록 시골 학교에서지만 공부를 곧잘 해서 항상 순위권 안에 들었고, 모범생이었기에 선생님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내 사정을 듣고는 중학교 체육선생님이 했던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많았고, 꿈이 많았다.

중학생 때까지 내 꿈은 변호사였다. 억울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변호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사실 아는 직업이 별로 없었다. 고등학생 때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문학이 좋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다. 국어선생님이면서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쓰며 살면 좋을 것 같았다.

대학은 서울로 오게 되었다.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은 한 번도 내지 않았고, 장학기숙사에 살아서 생활비도 크게 들지 않았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서 받은만큼 돌려주고 싶어서 사회적기업의 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해외여행 한번 해본 적이 없었지만, 외국어 하나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좋은 기회를 많이 얻서 해외 봉사활동, 공공기관의 해외사무소 인턴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경험했다. 주머니에 든 것은 없어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졸업할 때가 되어 남들처럼 취업을 해야 했다. 문과에서 가장 인기있던 은행권과 종합상사를 지원했다. 국책은행과 종합상사 각각 한 곳에 합격을 했고,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결국 종합상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나의 인생을 일기보다는 좀더 깊게, 그렇지만 부담스러운 자서전은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글로 풀어 가고 싶다. 더 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도록 쓰고 또 써내어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내가 되도록. 내가 어떤 토양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텃밭을 일구어 나갈지.


나도 나를 모르면, 누가 나를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