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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스 Nov 17. 2023

회사원 김선임의 부동산 스토리

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3. 남들도 다하는 직장생활



조금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선임의 직장생활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선임이건 후임이건 모두 김선임보다 나이가 많았고, 하물며 수석님과의 나이차이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기업이고 모두들 배우신 분들이라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언행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늦은 나이에 막내일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김선임, 오늘 회식인데 준비했지?”

“네? 뭘 준비하면 됩니까?”

“어허 이 사람, 오늘 분명히 신입사원들에게 건배사를 시킬 거야. 그 건배사를 준비해야 해”

“아? 건배사를 요? 네, 알겠습니다.”

‘뭐라고 하지?’

김선임은 해보지 않았던 일에 고민을 했지만, 사람들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그냥 열심히 하겠다 하면 되지 뭐’


회사에서는 요상한 관행이 있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회식 때 인사를 한 명씩 하러 회식자리를 돌아다녀야 한다. 무슨 얘기냐면, 저 사람들은 한잔이지만 난 최소 10잔 이상 많게는 30잔 이상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싫어하진 않지만 강제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 좋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단 시작은 건배사.

“안녕하십니까, 02년도 정시 신입사원 김선임입니다. (물론 이때에는 그냥 평범한 연구원이었고, 추후 주임연구원을 거쳐 선임연구원으로 진급을 하게 되지만 매번 호칭을 변경하기에는 혼란이 있을 수 있어 김선임으로 통일함)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진학 후에 다시 입사를 하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건배사는 제가 ‘잘하자’를 외치면 여러분들께서 ‘김선임!’을 외쳐주시면 되겠습니다.

“잘하자!”

“김선임!”


그렇게 뜨거운 환영인사를 뒤로 하고 소주잔을 들고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눈을 떠보니 기숙사 내 방에서 자고 있기는 한데,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너무나 부댔겼다.

그래도 출근을 해야 하기에 일어나서 씻고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말해 뭐 하겠나. 출근해서도 정신이 없는 건 매 한 가지.

화장실에서 살짝 졸기도 하고, 근접선배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그렇게 오전을 버텨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서야 살만해졌다.

그렇게 신입사원의 신고식을 무사히 치렀다.

그렇게 그럭저럭 남들과 똑같이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앉자마자 꿀잠을 자고, 복장은 당연히 회사 작업복.

이 시기에는 옷을 별로 사지 않았던 것 같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정신도 없었고 돈도 없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딱히 많은 옷이 필요 없었다.


개인적인 지출이 없었기에 돈을 많이 모았을까?

전혀 아니다.

사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김밥할머니의 기부.

평생을 모으신 10억을 흔쾌히 모 대학에 기부하셨다는 뉴스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오곤 한다. 못 배운 게 한이 되니 부디 학생들의 교육에 써달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부자냐. 

그건 또 아니다.

할 줄 아는 게 음식밖에 없으시고, 또한 가게를 얻어서 하실 만큼 자금이 넉넉지 않으신 할머니께서 평생을 모으신 돈이다.

그런데 김밥을 말아 팔아서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모았을까?라고 난 매번 궁금해했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내 결론은 하나였다.

“돈은 많이 번다고 많이 모으는 게 아니다. 안 쓰고 모아야 한다.”

억대연봉자가 돈을 많이 번다고 많이 모으느냐? 아니다. 많이 벌면 많이 쓰게 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으려면 안 쓰고 모아야 한다.

라고 굳게 믿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 시기에는…

지금은? 

푼돈은 모아봐야 푼돈이다.

돈을 많이 모으고 싶으면 많이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김밥할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분! 리스펙!

생각해 보면 정말 돈이 없었는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을 하셨을 것이며, 또한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것에 엄청 기뻐하셨을 것 같다. 

다시 말해 단순히 버는 것에 기쁨을 느끼셨고, 그 돈을 쓰면 옛날처럼 가난하던 시절로 돌아갈까 봐 함부로 돈을 꺼내 쓰지 못하신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이를 많이 드셨고, 물려줄 자식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시면서 그동안 없이도 잘 살았는데 나이게 이렇게 큰돈이 뭐가 필요할까 하시면서 그동안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로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대학교에 쾌척하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제가 돈을 벌어보니 돈 버는 게 정말 힘이 듭니다. 정말 정말 존경합니다. 김밥할머니.'


나름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기숙사생활로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거의 없었지만, 내 통장에 잔고는 항상 제자리였다.

조금 모일만하면 부모님 재건축 대출이자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보험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나의 노후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나중에 결혼도 못하고 혼자 나이 먹고 돈도 못 벌면 딱 할 수 있는 건 폐지 줍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바쁘게 일을 했지만, 참 암울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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