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6. 한선임 이야기
입사를 하고 나서 유독 신경(?)을 써주는 선배가 있었다.
바로 한선임.
한선임은 김선임보다 2년 정도 먼저 입사를 한 고참이다.
그렇다고 2년 동안 막내 생활은 한 건 아니다.
천안 연구소가 생긴 지가 1년 남짓이었으니, 1년 정도 막내생활을 한 모양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온갖 허드렛일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신입사원이 왔으니 얼마나 반가우랴.
안양에 메인 연구소가 있지만, 품질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결국은 연구소와 생산라인이 멀어서라고 결론을 내리고 천안분소가 탄생한 것이다.
생산 및 시험과 같이 품질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그때 한선임도 함께 끌려 내려왔다.
한선임이야 미혼이기도 하거니와 안양의 주거비가 만만치 않아서 오히려 반겼다고 한다.
이제는 슬슬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하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주말이면 항상 소개팅 약속이 잡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팅이 잘 된 모양이다.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있더니 언제부턴가 싱글벙글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발표를 하게 된다.
그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계속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한선임도 결국은 결혼을 하는 데 있어 제일 큰 고민은 주거였다.
와이프의 직장은 서울, 한선임은 천안.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양쪽 모두 출퇴근이 가능한 수원에 살림을 차리게 된다.
한선임의 집안은 워낙 부농의 집이라 부모님이 집 문제는 해결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어느 정도 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하신 모양이다.
결국은 퇴직금까지 땡겨서 집을 매수하게 된다.
그리고 힘겨운 출퇴근 생활이 시작된다.
수원은 양쪽 모두 출퇴근이 가능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둘 다 너무 피곤한 지역을 고른 게 아닌가 싶다.
나름 서로 배려를 했다고 생각해서 고른 지역이겠지?
출퇴근 거리를 이유로 한선임은 한동안 빠른 퇴근을 했다.
그래도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개발했던 제품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고, 설계를 변경해서 내부 시험을 해야 하는데 기한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퇴근시간은 늦어지게 되고, 한선임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선임은 차를 몰고 왔다.
모닝.
장거리 운전에는 고속도로 비용도 절감되고 세금 부분에도 유리한 모닝이 적합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차량 가격도 많이 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또 다른 지옥이 열리게 될 걸 이때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 알고는 못하지.
전에는 셔틀버스 시간도 있고, 차를 가진 사람이 데려다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함께 남아 있어야 하는데, 각자의 스케줄이 있기에 그 모든 걸 다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근무시간에 더 몰입해서 일을 하고 마지막 셔틀시간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 언제든 퇴근할 수 있는 차가 생겼다.
윗 상사들도 모두 알고 있다.
점점 퇴근시간이 늦어지더니 자정을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 기한을 정하고 동의를 가장한 강요를 해 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아니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일정이 늘어지면 무조건 맞추라는 압박이 내려오곤 한다.
“일정도 못 맞추고 퇴근할라고?”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주간업무 회의를 한다.
회의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회의가 길어지면 또 일할 시간이 줄어든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아 오늘도 집에 일찍 가긴 틀렸군”
김선임 입에서 탄식처럼 말이 튀어나온다.
정말 울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회의가 끝나면 한선임은 이렇게 말한다.
“담배 한 대 피우러 갑시다”
모두 우르르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바빠 죽겠는데 뭔 회의를 오전 내내 하냐고”
“미치겠다 정말”
“자자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그래도 한선임이 잘 다독여서 일을 해야 하기에 한선임은 독려하는 말로 후배들을 다독인다.
담배를 피우고 내려오면서 사적인 얘기도 하게 되는데, 한선임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는 말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랑 안 어울리는 말을 한다.
“얼마 전에 산 저희 집이 조금 올랐더라구요. 하하하”
“아이쿠 축하합니다. 하하”
정말 축하를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집에 족쇄가 채워져 힘든 출퇴근과 온갖 더러운 꼴을 다 이겨내고 직장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다.
대출금 갚아야지.
그래도 김선임은 한선임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래도 자기 집이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