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7. 최소장 이야기
천안 연구소의 최고의 어른은 최소장이다.
천안연구소장.
원래 연구소 출신은 아니고, 설계출신인데 나름 운이 좋아 어찌어찌 연구소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게 되었다.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는 이랬다.
먼저 연구소 쪽에서 그해 개발과제를 제안하고, 그게 선택이 되면 1년 혹은 2~3년 간 개발을 진행한다.
보통은 산업용 인버터, 태양광 인버터, 산업용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등을 개발하기 때문에 보통은 1년이 넘지 않는다. 다만, 간혹 자동차용 인버터를 개발하게 되면 2~3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이 되고 품평회까지 모두 끝나서 양산이 결정이 되면 프로젝트는 설계팀으로 이관된다.
그때부터는 설계팀 소관이기 때문에 이관을 받을 때 무척 까탈스럽게 군다.
이관을 하고 나서는 연구소는 손을 완전 떼느냐? 그건 또 아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실제로 개발을 했던 팀은 설계팀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오히려 연구소 쪽에 SOS를 쳐야 하는데 약사 빠른 설계팀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냐?
일단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모든 유관부서를 호출하여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 결과는 당연히 개발을 잘못해서라고 결론이 난다.
그렇다면 연구소만 죽일 놈 되는 거지 뭐.
“니들이 개발을 이따구로 해놔서 그렇잖아 고쳐놔!”
뭐 요런 식으로 흘러간다.
아니 요런 식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개발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험팀이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처럼 그렇게 시험을 했으면, 그 단계에서 못 잡아낸 시험팀도 잘못이지 왜 개발만 죽일 놈인지 원.
그리고 개발에서는 프로토타입만 개발을 하기 때문에 양산은 안 해봤지 않나.
분명 착실하게 전 프로젝트를 이관해줬고, 양산중에 문제가 발생했으면 설계 쪽에서 문제를 잡아야지 왜 개발을 물고 늘어지냔 말이다.
이관을 받을 때에도 이미 이렇게 될 거를 알고 있기에 성실하게 이관을 받지도 않는다. 대충대충 이관을 받고 나서는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물귀신처럼 개발을 물고 늘어지는 게 이제까지의 관행이었다.
아무래도 양산을 하는 생산업체다 보니 시험과 설계팀에 힘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거기에 한몫을 더한 것이 연구소장이 설계팀 출신이다.
아무래도 연구소 인원보다 설계팀하고 일했던 기간이 더 길다 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겠지.
연구소장뿐이랴, 각 파트장도 결국 다 설계에서 내려오신 분들이었다.
그래 개발이 죽일 놈이지.
양산중에 문제가 터져도, 날이 더운 것도 추운 것도, 갑자기 비가 와도 개발이 문제다.
개발 때문이다.
비약이 좀 심하다고?
무슨, 회의 들어가면 정말 개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다.
이런 분위기는 모두 윗사람들이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분위기를 일개 연구원 따위가 바꿀 수는 없으니 그 엄청난 욕은 실제 개발을 진행했던 말단 연구원들이 먹는 거지 뭐.
그리고 이런 일이 터지면 연구소의 불은 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는다.
터진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문제에 대한 보고서 작성, 문제 해결에 대한 보고서 작성 및 보고.
그리고 올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일정에도 지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병렬로 진행해야 한다.
어렵다 어려워.
최소장은 설계 개발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일찍 개발업무를 내려놓고 관리업무를 했다고 한다.
시간은 쭉쭉 거슬러 올라가서 IMF 시즌 때, 정말 자고 일어나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잘려나가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 회사에는 목숨을 걸 만큼 충성을 다 했다고는 하지만 급여가 쎈 윗분들이 모두 잘려 나가면서 최소장은 한낱 주임에 불과했지만, 팀의 탑이 되었고 그때부터 관리업무를 진행했다고 한다.
최소장에게 직접들은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소설을 써 본다면,
개발팀에서 그 당시에는 당연히 개발경력이 제일 높아서 말이 먹혔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고급 인력들이 후배사원으로 들어오면서 회의 때마다 말이 먹히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힘든 시절을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밀려날 순 없지'
한 소장은 이렇게 마음먹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어떤 일이 있을까 고민을 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미친듯이 책을 읽는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도니까.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말에 외래어가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는 외래어인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 이거다 이거'
그때부터 최소장은 보고서가 올라오면 빨간펜으로 틀린 부분을 지적해서 다시 작성을 하라고 호통을 친다.
“한 기업의 연구원이 되어서 이런 외래어나 쓰고, 맞춤법 띄어쓰기도 모르고 보고서를 쓴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제품의 메뉴얼도 연구원분들이 작성하셔야 하는데 맞춤법이 틀린 메뉴얼이 나간다면 회사 얼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 일정도 밀려서 개발업무만 해도 퇴근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왜 이런 걸로 자꾸 발목을 잡는 걸까’
김선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말단 연구원들 뿐이었다.
관리자들은 그렇게 최소장의 지시를 잘 따르면서 아랫사람들의 관리를 하면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왜?
그들도 사실 설계팀 출신으로 개발을 진행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일로써 아랫사람들을 갈굴 명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이렇게 회사가 돌아간다고?’
솔직히 이때 김선임은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돌아가더라.
정말 한두 명의 능력으로 돌아가는 작은 회사가 아니면,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 돌아간다.
다시 말하면 사람 하나하나가 그냥 어떤 시스템의 부품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적인 면은 좀 없지만 그게 회사다.
회사도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다.
절대 자선단체가 아니다.
최소장은 어쨌든 그렇게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고, 후에는 큰 프로젝트의 태스크장까지 하게 된다.
희한하지만 그게 회사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큰 프로젝트의 태스크장을 하게 되면서, 워낙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쟁쟁한 기술고문들이 많았고, 결국은 아는 게 별로 없는 게 들켜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높은 곳까지 와 버려서 그렇게 짐을 싸서 집으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