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흩어 보내버리지 않기 위한, 감추지 않은 익명의 상담 기록
나는 썩 괜찮아지고 있었다. 나이 든 꼰대들과 젊은 꼰대들이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소굴에서 이제 막 탈출했으니 말이다. 또, 운 좋게 군에서 전역하는 타이밍에 거의 맞추어 행복주택에 당첨됐다. 덕분에 야밤에 한 시간씩 샤워(순수하게 샤워기 소리만 한 시간씩 들렸다.)하는 룸메가 살던 간부숙소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룸메는 뭔가 참 싸했던 게, 공용 공간에는 절대 개인 물건을 두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긴 하다가도 이제 막 설거지를 끝낸 식기도구들을 물 뚝뚝 흘려가며 방에 가져갈 때나 한 집에 살면서 샴푸와 바디로션이 든 바구니를 들고 샤워하러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왜 나가 살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차올랐다. 어쨌든 간에 이 세상엔 참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는 것을 매일같이 느끼게 해주는 룸메이트를 뒤로 하고 나는 내가 돌아와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인정받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선생님이 무엇을 하나 부탁하면 몇 분이면 뚝딱 처리하는 능력이 있었다. 고생스러웠던 군 생활이었으나 공보정훈 장교로 복무한 덕분에 글 쓰는 실력도 전보다는 더 좋아졌고 디자인 감각도 생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여서 걱정했던 부분도 많았지만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잘 지내고 있었고 수업도 꽤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하고 있었다.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도 사는 곳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전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편안하고, 분명 더 좋았다.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도,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태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한 달이 지나서야 센터를 찾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전히 은연중에 늘 우울했다. 나는 인정받고 있었으나, 이는 인정받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그 일들이 버겁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나를 쉬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또 이미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다른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자 했다. 여자 친구가 다른 모임에 가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여전히 혼자인 나는 연약했고, 외로웠고, 우울하고, 공허했다.
나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에서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혼자여도 괜찮은 나'가 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나와 잘 지내지 못했다. 사실은 '나' 자신과 가장 오래 있으니까 나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영 그렇질 못했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 같은지 묻는 물음에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니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즈음? 아니면 그 이후 제법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더 많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학창 시절 즈음에는 별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소심한 학생 중 하나였다. 친구 하나 없는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류에 속하진 않았다. 공부도 썩, 운동도 썩, 잘하는 것이 특별히 없는. 그런 학생이었다. 때로는 나 스스로가 답답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운좋게도 고등학교는 원래 살던 지역에서 조금 벗어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다니게 되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처음 사귄 친구들에게 조금은 다른 나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덕분에 내 인생의 첫번째 개척시대를 열 수 있었다. 하염 없이 소심하던 내가 큰맘먹고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꾹 닫혀 있던 성격이 조금은 열리기 시작했다.
내 성격을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 즈음 바꾸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 했을때, 센터장님은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었겠어요. 대단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자존심 상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말에 또 울컥해서 다음 이야기를 한참동안 이어가질 못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참 많이 객관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누군가가 들었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일들을 그저 견뎌야했거나, 해야만했거나, 별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거나, 그런 느낌이다. 전형적인 내담자가 되는 기분은 그러했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들로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그 일들이 객관화되어있는 입장에서는 대단한 일로, 한편으로는 대단하지만 굉장히 희귀하진 않은 일로 분류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것이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조금 낯설고 오묘했을 뿐.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싸고 귀한 금 반지를 다들 손에 하나쯤 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했을때는 더 이상 숨겨지지가 않았다. 그냥 온갖 이야기들을 털어낼 뿐이었고, 하나 하나 가볍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