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그리고 문득 우울해지곤 했다. 혼자 있을 때 특히나 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타인들과의 끈을 계속해서 연결했다.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여자 친구를 더 자주 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집에 들어서면 일단 무엇인가 틀어놨다. 뉴스, 유튜브 먹방, 경제채널 등등 귀에 들리던 들리지 않던 상관은 딱히 없었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면 오롯이 나 혼자.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와 썩 친하지 않았다.
인사이드아웃 : 슬픔이 / 지니 / 2018-09-27 / 산그림
내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디즈니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는 슬픔이 나의 핵심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려워서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뻔하게도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해 고민하며 '오티움'이라는 책도 읽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내가 빠져들 수 있는 새로운 취미만 찾으면 금방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매우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군입대를 일주일 앞두고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여행이었으나, 낯선 나를 데리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께름칙하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내가 왜 그런 것인지 어렴풋하게 드는 생각들이 있긴 했다. 어린 시절 늘 다투던 부모님,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와 가난한 집구석.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된 후 4년의 암투병을 끝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여전히 가난하고 매일 술 마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전략은 '외면과 탈출'이었다. 다행히도 내 몸 하나는 그곳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한 인간을 혹사시켜 벼랑까지 몰고 갔던 부단한 노력 덕분에 나는 교사가 되었다. 현재 나의 상태가 내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은영 박사님의 '화해'라는 책도 읽어보았다. 울컥하며 눈물을 삼킨 몇 구절들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 사이에 장교로 군 복무를 한 나는 술이 꽤 늘었다. 군인들이 원체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아니니 혼술이나 하며 취기에 우울함과 외로움을 날린 날이 많았다.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었다. 일주일 중 7일을 한 잔이던 두 잔이던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은연중에 늘 우울해했기에 결연한 의지를 다져야 겨우 몇 날을 입에 술을 대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천만 다행히도 이런 나는 마침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교사로 복직을 하고 삶이 조금 안정되면서 심적으로 전보다는 여유가 생긴 것과, 청년 마음건강지원 사업 덕분에 상담비가 크게 부담되지 않아서 심리적인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건강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도 내가 가진 이런 감정과 생각이 상담을 받아야 하는 정도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의 나는 잘 헤쳐 나와 썩 나쁘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받은 상담의 기록이자 나의 해방일지이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은 2022년 JTBC에서 방영한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따왔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염미정은 사내 동아리로 '해방클럽'을 만든다.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목표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해방클럽은 그저 우리가 매여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모임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나는 참 많은 것들에 매여 있었다. 이 글이 누군가를 해방시킬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이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무엇에 매여 있는지. 또, 문득 찾아드는 수많은, 사소한 우울과 불안과 강박이 어디에서 찾아오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