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행복하려 한다.
“앞으로의 목표 혹은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혹은 사회적 입지가 달라진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록 빈번하지는 않지만 타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았다. 최근 이직을 위한 면접에서는 ‘회사 일원으로서의 목표가 무엇이지’에 대해서, 최종 합격한 이후에는 팀 선배로부터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면접에서는 질문자의 의도에 맞는 혹은 질문자가 생각하는 모범 답을 충실히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후자는 독립 된 인격체로서 내 삶의 지향점을 진솔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아니 내 생각이 그러했다. 선배의 질문은 그저 나에 대한 단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일뿐이다.
“자상한 아빠, 사랑스런 남편, 의젓한 아들 그리고 신의 있는 동료가 되는 것이 제 삶의 가장 큰 목표 .....ㅂ니다.”
답변하는 도중에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가 나의 말끝을 흐리게 하였다. 유쾌해 보이지 않는 선배의 씁쓸한 미소가 나의 답변에 문제가 있었음을 일러주었다. 아무래도 나의 면접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나보다.
“언제나처럼 성실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역량을 발휘하여 동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일원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향후 회사 성장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10년이 넘는 회사생활 짬밥으로,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해 답변을 수정해보았으나 그가 생각하는 모범 답과는 꽤나 요원했던 모양이다. 인자함으로 둔갑한 그의 미소에는 왠지 알 것만 같은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꿈이 너무 평범하다. 기획팀이면 대표이사를 목표로 하겠다든지, 신규사업을 개발해서 향후 회사 성장에 기여하겠다든지. 조금 더 도전적이고 건설적인 목표가 필요해 보이는데? 평범한 목표라고 해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 생활에서는 자신만의 큰 목표와 설계가 필요한 법이야.”
회사 생활에서 나름의 설계와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는 선배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조직인 만큼, 충분한 의미가 부여 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도달하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다만, 성실함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동료들에게 신뢰 받는 일원이 되는 것은 구체적이지는 않을지언정 “부족한”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현실적이고 무난한 목표라기 보다는 이상적이자 간절한 목표이다.
불과 4~5년 전만하여도 누군가 팀 선배와 같은 질문을 하였을 때, 또는 나의 포부를 밝히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나의 삶의 목표는 한 회사의 대표이사임을 당당히 말하였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답변을 찾아서 답한 것이 아닌, 내가 속한 조직에서 “성공”이라고 칭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목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정도 목표는 되어야지만 현실의 벽에서도 충분히 도전적이었고, 품격 있는 삶을 추구했음을 나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내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커다란 목표에 비해 한참 부족한 역량 탓으로 나의 회사생활은, 아니 나의 삶은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꽤나 치열했다. 누구보다도 많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휴일과 주말의 개념은 안중에도 없었고 부족한 실력을 올리기 위해 새벽시간을 틈타 각종 회계, 세무, 투자 등의 서적을 섭렵하는데 집중도를 높였다.
그러나 목표를 향한 초석이 다져지고 이 길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믿음이 짙어져 가는 시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표이사가 되는 것이 나의 삶에 가치 있는 일인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 목표를 도달할 수 있을까? 그 길이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인가? 무엇보다 나는 행복할까?
어느 순간 삶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곁에 너무나 당연하게 있어야만 했던 친구는 세상을 떠나고, 수업시간 우렁차셨던 스승은 찾아 뵙지 못한 사이에 백발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호탕할 것만 같은 아버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몸을 가누질 못하신다. 나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요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무심했던 것들에 대해서. 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갈구했던 사랑, 화합, 나눔의 가치들에 비주어 내가 향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위해 삶을 살아간다.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실천하며 내면 속에서 행복감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살아 온 방식은 대부분 후자보다는 전자였다. 하지만 그러한 삶 속에서 “행복”이란 단어는 없었다.
회사의 대표이사 혹은 임원이 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설령 충분한 노력을 쏟았다 하더라도 쉽게 달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의 성취감은 삶의 전체를 지배할 것과 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하며, 당분간은 설레는 가슴으로 저녁잠을 이루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성취를 이룰 재능이 없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유한한 시간에 노력을 쏟아 부을 만큼 삶에서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은 큰 환희를 느낄 수는 있을지는 모르나 삶의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인생의 완성을 맞이하는 순간,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한채로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볼 것이다. 내 하루 순간 순간을 의미 있게 해주던 소중한 가치들, 가까이에 있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연대.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것과 다르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사소하지만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치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가치로 인해 내 삶은 즐거웠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에서도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4년 전 첫째 아이가 태어난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내 머리 속 세상이 온통 하얘졌다. 분만실에서 신생아실로 이동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신께서 주신 축복의 시간을 절대 놓아버리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 사랑스런 남편이 되는 것,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을 공감했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의무감이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주어진 시간과 가슴 속 열정이 허락하는 한, 고맙고 그리운 사람들과 조금 더 마주하고 싶다. 가까이 마주한 이들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내 삶의 목표는 세상에 대한 나의 확신이자 옳다고 생각하는 길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다. 후회 없이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 조차 기쁨과 사랑의 풍요로움이 나에 곁을 함께할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은 채, 나의 삶을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