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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n 04. 2024

멋지게 차려입는 즐거움

 우리 아들은 옷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나름 자기의 기준이 있어서, 내가 예쁘다고 사온 화사하고 보송보송한 옷들은 안 입으려 들고 태권도장 단체티와 축구 유니폼을 제일로 친다. 주말에 '오늘은 멋지게 입고 싶어'라면서 축구 유니폼을 입는 아이라서 나도 아이 옷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어차피 태권도에 주5일 가는지라 도장 옷이 교복이나 마찬가지이다. 늘 똑같은 옷만 입히다보니 내가 좀 아쉬울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편해서 좋다. 어느새 아이의 옷장은 더럽히며 놀아도 상관없는 편한 옷들로 거의 찼다.

 그러다가 내 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이가 입을 만한 정장 스타일 옷을 여러 종류 주문시켰다. 반팔 자켓과 반바지로 구성된 정장세트,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 세트, 푸른 셔츠와 남색 바지 세트, 거기에 나비넥타이까지. 그리고 아이가 몹시 귀찮아할 것을 예상하며 입어보라고 했는데 - 항상 사이즈 확인하러 옷 좀 입어보라고 하면 툴툴대고 귀찮아하니까- 굉장히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입어보는 것이 아닌가.

 "엄마, 이게 바로 스마트 클로스지? 마음에 든다."

 아이가 읽었던 영어책 중에 등장인물 어린이가 smart clothes 를 사러 가는 내용이 있었는데, 몇달 전에 읽은 그 책 얘길 꺼내며 흐뭇해했다.

 평소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면 여자애 같으니 하지 말라고 질색을 하는 애라서 리본 쉐입인 나비넥타이는 아마도 거절당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정말 오산이었다. 뿌듯해하며 거울을 게속 들여다보더니 잃어버리지 않게 어디에 놔둘지 의논하고, 엄마가 잊지 말고 꺼내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여러 후보 중 정장 자켓과 바지 세트를 고르고, 하얀셔츠와 나비넥타이를 받쳐입더니 구두도 욕심을 냈다.

 로퍼 스타일의 어린이 구두를 몇 개 찾아서 보여줬는데 갸우뚱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 그런데 구두라는 건 뒤에가 이러어어케 생긴 거 아니야?"

 양손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신발 뒤를 가리키길래 이게 무슨 소리일까 했더니 굽 달린 구두를 의미한 것이었다. 아니 아무려면 네가 스틸레토힐까지 각오했단 말이냐.

 그건 여자구두의 한 종류이고, 남녀를 떠나서 어린이들에겐 안 맞는다고 설명해주면서 내 구두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신발장을 들여다보니 이제 나에겐 그런 힐이 없었다. 조금씩 정리해서 몰랐는데, 어느새 나에겐 3센치 이상의 구두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들에게는 금장 장식이 달린 어린이용 검정색 로퍼타입 구두를 사줬다. 불편할까봐 갈아입을 옷과 신발을 챙겨서 결혼식장에 갔지만, 아이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나시에 팬티 바람으로 있다가 그날 저녁에 함께 슈퍼에 갈 때 다시 정장을 챙겨입고 나갈 정도로 본인의 차림새를 마음에 들어했다.


 거의 잊고 살았는데, 확실히 멋을 부리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이 있다. 회사에서 보면 어떤 이는 매일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갖추고 출근한다.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옷도 편한 차림을 선호하지만, 일상적으로 예쁘게 꾸미고 잘 차려 입는 사람들을 보면 눈이 즐겁기도 하고 프레쉬한 기분이 든다. 


 동생의 결혼식날 이른 아침, 혼주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오랜만의 본격적인 메이크오버에 꽤나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부스스한 머리칼을 일단 드라이기로 편 뒤 중간 높이의 번으로 만들어내는데 신부도 아니건만 어찌나 핀을 꽂아대고 한참이 걸리는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를 거의 마무리한 뒤 기본메이크업을 해주는데 내 피부톤에 비해 굉장히 하얀 톤으로 덮어서 부담스러웠고 색조 메이크업의 결과로 나온 인조 속눈썹이나 선명한 입술색이 어색하고 어쩐지 나이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런 풀메이크업말고 미용실에서 머리자른 뒤 서비스로 해주는 드라이, 솜씨좋은 일반인의 메이크업 정도가 나에게는 적당히 예뻐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수준 이상으로 공들여 치장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한껏 아름답게 꾸미는 기쁨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호품이 아닐 뿐.

 그날 샵에서는 '멋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관리를 일상적으로 받는 직업을 가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정장을 입히고, 나도 한껏 꾸민 한나절이 꽤나 즐겁고 인상적이긴 했으나 열두시 종이 울린 신데렐라처럼 우리의 평소 차림으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날의 신부였던 동생도 식이 모두 끝나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친정으로 왔는데, 결혼식에서의 모습과 상당한 간극이 있으면서도 시간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이 여전히 당일 낮이다보니 우리 모두 짧은 연극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멋을 부리며 아들의 새로운 취향과 모습을 발견하고 보니 가끔 아이는 스마트 클로스를 입고 나는 평소보다 신경써서 맵시있게 차려입고 함께 외출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본인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멋지게 차려입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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