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책에서는 대여섯 살 무렵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추억에 잠기거나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하는 에피소드가 종종 나온다. 나는 그런 컨텐츠를 접할 때마다 신기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기억은 몇몇 장면들로 압축되는 수준이고, 서사적이기보다는 단발적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직까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단상들은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라 당시 힘들고 괴로웠던, 어떤 의미에서든 충격을 줬던 일들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은 안 좋았던 이벤트 위주로 남아있다. 그때의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권위주의적이었고, 확실하고도 치명적으로 나쁜 교사들도 많았다. 학교는 뭐라 말할 수 없이 무질서하면서도 그 특유의 규율이 있는 곳이고, 그래서 그 사회에 잘 맞는 성격을 운 좋게 타고났거나 아주 영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 고통을 겪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예전엔 그에 더해 분명한 사악함을 가지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사들조차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은 아직도 이름이 기억날 정도로 내가 어린 시절 오래오래 곱씹었던 사람이었다. 당시 드센 남자애들 몇몇이 애들 물건에 침을 뱉는 장난을 많이 쳤는데 어느 시험날, 그런 무리 중 한 명이 내 책상과 가방에 침을 뱉었고 나는 질색하며 선생님에게 일렀다.
그녀는 짜증을 버럭 내며 '왜 이렇게 귀찮게 해! 너네 다 나와서 엎드려 뻗쳐'라고 나까지 같이 벌을 세웠다. 시험도 못 치게 하고 한 교시 내내, 40분 동안. 나는 체질적으로 머리를 아래로 하는 동작을 취하면 머리로 피가 쏠리고 코가 막혀서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그때 느꼈던 수치심, 억울함과 함께 뚜렷한 육체적 고통이 기억난다. 머리가 아프고 숨쉬기 힘들었다. 점점 팔에 힘이 빠지고 손바닥이 마룻바닥에 짓무르며 견디지 못해 바닥에 쿵 하고 엎어지자 그 여자가 다시 짜증을 냈다. '누가 시끄럽게 쿵쿵거려!'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그날, 그 한 교시 동안의 일이 정말 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지나간 후 남자애들은 '야, 어차피 침 뱉어도 지들도 혼나니까 못 일러.' 라며 기세등등했다. 사건을 전해 들은 엄마는 고민 끝에 담임에게 찾아가 돈을 줬다. 정확히는, 돈봉투를 끼운 책을 선물했다. 그 여자는 '아휴, 00이가 남자애들이랑 맞서려고 하더라고요.'라 말했다고 한다. 아마 그 뒤로는 그 여자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함부로 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반 애들은 모두 그 여자가 촌지를 즐겨 받고, 그에 따라 애들을 차별한다는 알았다. '돈을 넣을 수만 있고 다시 찾을 수는 없는 XX 은행'이라고 담임 이름을 넣어서 킥킥거렸었다. 당시 우리집은 평범한 외벌이 가정이면서 애 셋을 키웠으니 살림이 넉넉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 아이를 학대한 교사에게 잘 부탁한다고 웃으며 돈을 건네줘야 하는 시절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나는 이 기억, 수치심, 증오에 어느 정도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선생님을 싫어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를 보면 '왜 그런 걸 하고 싶지? 어떻게 그런 일을 스스로 하고 싶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란 존재는 학창시절에 가장 오래, 가장 자주 접하는 대표적인 어른인데 안타깝게도 꽤 오랫동안 나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어쩐지 비윤리적이고 악랄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원망이나 분노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그저 오래오래 감싸안고 충분한 시간이 흘러 녹을 때까지 품어버렸다.
한창 종교적, 윤리적 감수성이 예민했던 십 대 시절 교회에 다니며 주기도문을 외울 때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구절에서는 그 여자를 생각했었다. 용서하기 싫다고. 그 여자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는데, 왜 그걸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내가 괴로워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보다 훨씬 다이내믹한 학창시절을 보냈거나 원래 성격이 나보다 담대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비뚤어진 마음일 수 있다. 이런 일-억울하게 폭력을 당했고, 바보같이 아무런 대꾸나 반항도 하지 못했고,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다는 것-이 나에겐 입 밖으로 꺼내기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사건 직후 엄마에게 말했을 때 말고는 이 일이나 그로 인한 괴로운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은 적도 없었다. '그 여자는 지옥에 갈까?'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상처받았다는 자체를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런 세상이 아니다. 이런 교사는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돈과 선물을 받는 교사들도 지금은 -적어도 학교에는- 없다. 올바른 윤리적 가치관이 퍼져서라기보다는 제도가 일단 앞장선 결과일지라도 무척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권의식이나, 경제적 수준이나 모두 나 어릴 때에 비해 발전하다 보니 지금 우리 아들의 생활을 보면 이 아이에게는 오래오래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만큼의 나쁜 경험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남편과 나는 특별히 굴곡 있는 어린 시절을 보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 아들만큼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다고 확신하면서 종종 '나도 얘(아들)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지금 더 행복한 어른이 됐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들이 특별한 경우는 아니고, 지금 시대가 그런 것이다.
때때로 나는 아이에게 '우리 작년에 발리 가서 농구했던 거 기억나? 그 농구장은 나무그늘이 시원해서 좋았는데 여긴 너무 땡볕이다. 그때 아빠한테 슛 배운 게 지금도 효과가 있는 거 같은데?' '일곱 살 때 어린이집 같은 반이었던 ㅁㅁ 기억나? 같이 축구 배우러 가서 끝나고 잠자리 엄청 잡았었잖아. 잠자리 잡다 보니 생각난다.그치.' 하는 식으로 과거 에피소드를 괜스레 끌고 와서 들려준다. 내가 안 좋았던 기억들을 유독 오래 간직하고 그로 인해 거듭 상처받았던 것은 나도 모르게 자꾸 곱씹어서일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아무래도 평화롭고 편안한 일들을 자꾸 되돌려보진 않으니까 장기 기억으로 남기 위한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일부러 자꾸 들려준다. (물론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일상이 영혼에로 좋은 영향을 미쳐서 내면의 무언가로 간직되긴 하겠지만 명시적인 기억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영혼에 스크래치가 날 만큼의 고통이나 부당함을 겪을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은 이 세대의 아이들은 어떤 정서와 기억을 간직하고, 어떤 어른이 되어 어떤 세상을 꾸려나갈지 궁금하다. 물론 우리 부모님 세대가 보기엔 나도 어릴 때 그런 좋은 세상을 살았을 테지만.
고생 없이 풍요롭게 자라서 자기만 안다-라고 평가받는 경우와, 고생 없이 곱게 자라 사람 대하는 데 여유가 있고 양보할 줄 안다-라고 평가받는 경우 중 어느 쪽이 우세할까. 알 수 없지만 모쪼록, 예전보다 어린이를 존중하고 제도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 사회에서 자란 이들이 그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새 시대의 새로운 고통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좀 더 나은 사회를 꾸려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