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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n 27. 2024

왜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게 계속 힘들까

 우리 회사에서는 30분 단위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나의 첫번째 휴직기간 중 이 제도가 도입됐는데, 복직해서 이 소식을 듣고 나의 첫 반응은 '에이, 누가 (눈치 보이게) 그런 식으로 휴가를 써?' 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왜 이게 문제일까 싶지만 그땐 그렇게 느꼈다. 그런 나의 반응에 팀원들은 '다들 써요!' 라며 나를 옛날 사람 취급했는데, 조직 문화라는 게 영영 안 바뀔 거 같지만 흐름을 타면 의외로 금세 바뀐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탄핵 정국과 함께 정치사회 지형이 빠르게 변화했던 시기라서인지 1년여 회사를 떠나있다 돌아오니 이전 조직문화에 맞춰져 있던 내 반응은 평범보다는 꼰대에 가까워져 있었다. 지금은 물론 다시 조직의 평균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간제 휴가라는 게 논리적으로 무리될 것도 없고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도 없는데 왜 이제야 들어온 걸까 싶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아주 꼭 필요한 좋은 제도다. 일정상 여유가 있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좀 일찍 들어간다든지, 공공기관 방문이나 가전 AS를 위해서도 출퇴근시간에 붙여서 한두시간 휴가를  쓴다든지, 공연을 보러 약간 일찍 퇴근한다든지 용도로 쓰면 아주 적절하다. 


 내 경우엔 지난 한 달간 아이가 아프다고 연락와서 일하다 말고 시간제 휴가를 쓴 게 5번이다(물론 애가 아프다는 연락이 와도 바로 퇴근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혼자 쉬고 있으라거나, 보건실에 누워있으라거나 하고 일을 어느 정도 정리해놓고 들어가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의 휴가를 사용했는데 이걸 모두 반차 내지 하루 연차로 써야 한다면 참 곤란한 노릇이다. 


 시간제 휴가로 대응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평균 주1회 오는 회사 생활은 녹록치 않다. 제도도 있고, 내가 직장생활에 별다른 욕심도 없지만 맡은 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계획한 업무 진도는 있으니까. 아이가 크게 아픈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이 울렁거려서 토할 것 같다든지, 배가 따끔따끔해서 허리를 못 펴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복통을 호소하며 학원에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면 '그래도 참고 학원에 가'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원은 보육기관이 아니라서 아픈 애를 건사해줄 수 없다.

  나는 얘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 수가 없고,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분수 토를 하는 식으로 잠깐의 복통이 아니라 진짜로 배탈이 난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게 지나가는 아픔인지 정말 탈이 난 것인지는 결국 시간이 지나야 아는 것이라 어쨌든 최선을 다해 귀가를 서두를 뿐이다. 한 번은 애가 배가 아파서 학원에서 집까지 못 가겠다고 전화를 해서는 '나 병원가고 싶은데 지금 와주면 안돼?' 라고 하는데 도저히 바로 나설 수 없고, 가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지라 나의 동네 친구이자 아이 친구 엄마에게 병원 동반을 부탁하기도 했다. 사소한 이런 일들이 쌓이는 게 어느 순간 참 사람을 진빠지게 한다. 


 2학년이라는 수치를 들으면 마냥 어린애라는 느낌이 아닌데 실제로는 아직도 어리기만 하다. 사소한 성취에 의기양양해 하고, 작은 실패에 엉엉 울기도 하고,  이제 주말 아니면 엄마와는 영영 저녁에만 만나고 살아야 하는 거냐고 거듭 섭섭해한다. 직장어린이집이 생기고 시간제휴가 등의 탄력적인 근태제도가 도입되어 직장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 큰 힘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맞벌이 육아 문제없다'가 아니라 근근에 헤쳐나가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에 가까운 느낌이라 여전히 육아기에 경력단절이 많이 발생하는 게 이해가 간다.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구립 방과후 돌봄교실이 올해까지만 운영될 거란 소식을 들었다. 현재 운영주체가 익년도 돌봄교실 위탁사업에 지원을 하지 않았고 구청에서도 키움센터를 확대하는 쪽으로 큰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키움센터가 앞으로 서울에 백 개가 더 생긴다 한들 당장 6개월 뒤에 이 돌봄교실에 다니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데 별다른 대책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현재 돌봄교실 수탁기관이 신규로 위탁사업 신청은 안했지만 구청과 잘 이야기해서 연장이 될 수도 있다는데 언제 연장 여부가 결정될지는 모르고, 연장이 안될 경우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올해말 돌봄교실 종료가 이미 작년말에 예정돼있었다는데 왜 아직도 대책이 없는 건지, 그럼 당장 올해 겨울방학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처음 이 소식을 접한 날은 일이 손에 안잡혔다. 맞벌이는 그런 것 같다. 아이 스케줄이 외적 요인으로 뒤집히면 분노와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나는 양가 부모님의 힘을 거의 빌리지 않고 내가 꾸린 이 가족의 범위 내에서, 그리고 제도적 틀 내에서 육아와 직장을 최대한 병행해왔는데 육아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을 상당히 잘 갖춘 편인 회사에 다니고 있음에도 이 생활이 쉽지 않다. 남편이 평일에 가사 및 육아에 조금도 기여할 수 없는 여건 탓이 커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평시에 일반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 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근로여건을 아직도 못 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정말 아쉽다. 


 그래도 내가 직장생활 처음 시작할 무렵에 비해 이런저런 여건이 많이 좋아진 건 맞으니, 좀더 이런 변화가, 애가 있든 없든 라이프를 누리기에 부족함없는 근로 문화가 더 활성화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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